[이상민바스켓볼] (7)팬들이 있기에
기사입력 1999년 04월 25일 15시 17분
상무에서 군복무를 하던 지난 96년.
주말 외출을 얻어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한 여성팬이 찾아와 다짜고짜 거실로 들어왔다.
그 팬은 나를 보더니 "사실은 집이 부유한데 몸이 아프다. 부모님이 정략결혼을 시키려고 한다. 상민씨가 부모님을 만나서 내 애인이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옷차림도 평범하지 않은 이 여성팬은 한시간 가량 횡설수설했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친구를 만나야 한다"며 황급히 집을 나와 그 자리를 피했다.
당시는 두려웠지만 기억나는 팬 중 한명이다.
홍대부고 3년때인 90년 겨울 농구대잔치에서 처음 고정팬이 생겼다.
졸업예정자도 2차 대회부터 뛸 수 있었고 부상중인 （오）성식형 대신 연세대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나섰다.
삼성전자 김윤호 선배（현 SBS 코치）와 부딪치며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뜻깊은 팬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엔 "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을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득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주로 패스만 하는 숨은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팬레터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적혀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팬들은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인기절정이던 대학 4년때는 하루에 1000통씩 편지를 받았다. （우）지원이에겐 1300통씩 왔다.
농구부를 위해 별도로 사서함을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프로에 들어와선 40여통씩으로 줄었지만 막상 체육관에 가보면 오히려 팬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코트에 서면 팬들의 응원이 그렇게 힘이 될 수 없다. `팬들이 있기에 비로소 내가 있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앞선다.
더러는 화가 날때도 있다.
창원에선 이기고 난뒤 물병으로 머리를 맞았고, 원주에선 얼굴에 침세례를 받았다.
지방 경기때 어떤 팬은 밤 11∼12시에도 호텔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하는 바람에 당황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런 팬들은 극소수란 걸 잘 안다.
응원해 준 많은 팬들에게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드릴 것이며,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둬 팬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