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국내외 희귀 올드카 수집광 백중길씨
기사입력 1999년 04월 25일 15시 17분
키를 서너번 돌리자 다 찌그러진 삼륜차가 30년만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모델넘버 T600인 이 삼륜차는 1969년산.
한쪽에선 55년산 시발택시가 페인트로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기본틀은 미군용 지프지만 드럼통을 두드려 편 철판으로 차체를 만들고 엔진도 개조한 국산 1호차다.
경기도 남양주 마석 백중길씨(57)의 올드카 창고에 들어선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5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60년대 고급차의 대명사였던 크라운을 비롯, 국내 최초의 4륜구동 픽업트럭인 랜드크루저픽업, 신진지프 등 올드카들이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국산차뿐 아니다.
환갑이 훨씬 넘은 1933년생 포드 디럭스 세단,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초기에 사용됐던 M38 군용지프(41년), 캐딜락 프리트우드 75 리무진을 비롯해 마을버스 크기만한 대형 승용차 링컨 콘티넨탈 등 외산차들도 얌전하게 모셔져있다.
놀라운 것은 이 차들이 당장이라도 달릴 수 있을만큼 잘 정비돼있다는 사실.
올드카의 부품은 대부분 백씨가 직접 쇠를 깎아 만들었다.
백중길씨는 국내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수집가다.
자동차 부품상을 하던 73년부터 차들을 한두대씩 모아온 것이 지금은 200대가 넘는다.
자동차 회사도 갖고 있지 못한 희귀차들은 그의 분신이 됐다.
"차값을 따져보지 않았다"는 백씨지만 차를 모으며 돈도 많이 썼고 고생도 많이 했다.
창고가 없어 남의 땅을 빌어 차를 세워뒀던 시절엔 주차비를 내느라 허리가 휘었고, 여름에 옥외 주차장이 홍수로 침수되는 바람에 아끼던 차를 잃은 적도 서너차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자동차를 모아온 이유는 단 하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때문이다.
요즘엔 그럭저럭 보람도 있다.
방송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의 차들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영화 `쉬리'에서는 군용차, TV드라마 `은실이' `왕초' `육남매' 등에서는 시발택시와 삼륜차가 소품으로 등장, 시대적 현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74년형 폭스바겐 비틀이나 캐딜락 등 외제차들은 뮤직비디오 촬영용으로 인기.
차들이 더 망가지기 전에 번듯한 자동차박물관을 하나 짓는 것이 소망이다.
그는 이번에 첫 전시회를 연다.
다음달부터 열리는 99 서울모터쇼 `자동차 역사관'에서 국내외 차량 35대를 출품하는 것.
이번 모터쇼에서는 굴지의 자동차회사들도 못한 일을 오랜 세월에 걸쳐 해낸 한 수집가의 집념의 결정체를 볼 수 있다.
[남양주＝송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