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컬럼]조영남-절도범에 놀아나는 정치꾼들
기사입력 1999년 04월 23일 14시 11분
아! 이 무식한 국민의 슬픔이여!
왜 이렇게 서두부터 곡조 슬프게 나가는 지를 밝히겠다.
빌어먹을 `스포츠조선'으로부터 빚독촉같은 원고재촉 전화를 받고 이번엔 또 뭘 쓸까 끙끙대다가 요즘 한창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고관집 물건털이 녀석에 관해서 쓰기로 맘을 먹고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사! 이런 난감한 일이라니 이런 때 `도둑놈'이 맞는 건지 `도적놈'이 맞는 건지 초장부터 알딸딸 해 지는거라.
틀림없이 지난 주에 정재환이가 쓴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입니다"라는 내용의 국어국문학적 책을 읽은 후유증이리라.
슬픔의 싹은 여기서 움텄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에다 신학대학까지 수십년이나 학문에 몸담아온 내가 오십이 넘어 급기야 `도둑'은 뭐고 `도적'은 뭐냐로 국어대사전을 들쑤시게 된 것이다.
의외로 해답은 싱거웠다. 그게 그거였다. `도둑놈'이나 `도적놈'은 `여관'과 `호텔' 차이였다.
나는 원래 유전자 DNA가 DDR(딴따라)로 생성되어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일에 목숨을 거는 타입이라 이런 일로 종종 깊은 슬픔에 잠기곤 했다.
몇 년전 `경수로' 얘기가 막 터져 나왔을 때였다.
나는 문득 그게 궁금해서 우선 토목공사를 하는 친구한테 캐물었다.
"야! 상복아, 경수로가 뭐 하는 거냐?"
그런데 이 인간이 원자로에서 물이 나오는데 어쩌고저쩌고 어영부영이라.
나는 `에이 썩을 놈'하고 이번엔 임백천한테 전화했다.
녀석은 실제로 건축전공에다 건설현장 감독 출신 아니던가.
거기다가 TV에서 온갖 잘난체를 해왔잖은가.
"아! 네! 경수로는 말하자면 원자로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게 아마…"하며 우물우물이라.
`에이 쳐죽일 놈!'하면서 나는 계속 다른 친구들한테 물었지만 똑바로 아는 인간을 오늘날까지도 못 만났다.
광인이나 창세같은 녀석들한테는 아예 묻지도 않았다.
그냥 나 혼자 슬픔과 비탄에 잠겼다.
최근에는 그놈의 `코소보 사태' 때문에 또 한차례 슬픔의 가슴앓이를 했다.
나는 급한 김에 주위 친구들한테 넌지시 물었다.
"누가 코소보 사태에 관해서 쭉 설명 좀 해주라."
아! 나는 또 방정을 떤 거다.
또 실수했다는 걸 금세 알았다.
유고와 코소보,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그리고 나토와의 관계를 딱 부러지게 알고 있는 놈이 한놈도 없는거라.
나는 너저분한 친구관계를 당장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몇번이나 다짐했다.
우리는 전부 대강대강 대충대충 넘어가고 있다.
그래서 비행기가 떨어지고 신공항에 물이 샌다.
그러니 저 위의 정치꾼들은 정신 나간 자칭 대도 한명에게 휘둘려 놀아나고 저 아래의 국민들은 그게 `도둑놈'인지 `도적놈'인지가 헷갈려 우왕좌왕이다.
나 혼자 큰 칼 옆에 차고 시름에 잠길 따름이다.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