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전여옥-삶을 기름지게 하는 '요리'
기사입력 1999년 04월 22일 15시 20분
미국에서 아주 저명한 내과의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섹스와 자전거타기라고.
그 이유는 이 두가지의 공통점이 들이는 노력과 힘 시간에 비해 얻는 기쁨과 재미가 엄청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동감한다. 하지만 나라면 한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바로 `음식만들기'라고 말이다.
요즘은 아닌게 아니라 요리만들기가 붐이다.
얼마전 우리 아파트 게시판에도 `요리를 배우실 분 연락하세요'하고 휴대전화 쪽지가 붙어 있었는데 어느새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주부들 사이에 이탈리아요리, 중국요리, 일본요리 배우기가 한창인 듯 싶다.
또 내가 아는 여의사 선생님들도 그 바쁜 와중에 한달에 두번, 늦은 시간에 요리를 배운다고 했다.
열심히 칼을 간(?) 솜씨를 공개하겠다고 야무진 포부를 밝힌다.
나는 농담삼아 `진작 요리를 배웠으면 수술을 더 잘 했을 거예요'하고 아는 척을 했는데 의외로 `맞아요, 맞아요!'하고 호응이 컸다.
물론 자르고 쓸고하는 기본적인 동작이 같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요리는 인간에게 아주 원초적인 기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고 있을때 나는 행복하다.
장을 보고 있을 때는 인생에 대한 내 무한한 호기심이 하나하나 재료를 사면서 현실화된다.
그 뿐인가. 간을 맞추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살린 창조적인 요리를 만들때의 그 성취감은 바로 내가 이 고단한 삶은 사는 이유와 같다.
그리고 상품의 포도주(물론 주종은 그리 가리지 않는다)와 인간같은 사람들과의 대화가 함께 있을 때 나는 내 노후도 이처럼 포근하고 평화로웠으면 하고 눈을 가늘게 뜬다.
자전거타고 섹스하고 그리고 먹기.
어쩌면 인간에게 아주 원초적인 행위이다.
자전거는 일종의 노동을 뜻하고 섹스란 노동의 대가일 수 있다.
그리고 먹는다는 일은 우리가 삶을 이어가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혼자서 먹을 줄 아는 인간은 강한 인간이고 스스로 먹을 것을 요리할 줄 아는 인간은 독립된 사람이다.
그러나 둘이서, 여럿이서 먹는 대화를 즐길 줄 아는 인간은 사람다운 인간이다.
누군가를 위해 먹이기 위해 요리를 배우는 인간은 따뜻한 인간이다.
이 외로운 경제위기 속에서 요리배우기가 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바로 `따뜻한 인간'만이 살아남는 다는 이 시대가 준 교훈 때문이 아닐까. [방송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