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일월도사 '英여왕 감복시킨 동양의 기인'
기사입력 1999년 04월 22일 14시 06분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제뜻은 전했으니 다행이에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지난 19일 방한해 22일 떠날 때까지 `알현（謁見）'을 고대했던 한국 남자가 있다.
일정한 거처없이 `도를 닦는' 일월（日月．43．속명 양정하） 도사다.
주로 태백산에서 한민족의 번영와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는 일월이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영국 여왕을 만나려고 했던 것일까.
일월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의 `인연'은 지난 9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97년 8월 31일 파파라치에 쫓기던 황태자비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숨지자 일월은 그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일월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계시에 따르기 위해 암자를 파는 등 모든 재산을 정리,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도착한 곳은 영연방 국가의 하나였던 홍콩이었다.
"홍콩은 영국 식민지가 되는 과정에서 슬픈 영혼이 많이 생긴 곳이어서 그들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일월은 홍콩을 떠나 마카오, 태국, 인도, 프랑스를 거쳐 영국 버킹검궁전 앞에 `기도의 둥지'를 틀었다.
궁전에서 가까운 값싼 호텔에 숙소를 잡은 일월은 궁전 앞 광장과 다이애너가 살던 캔싱턴으로 두달 동안 매일 출근했다.
다이애나의 영혼을 위로하고 영국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며 축문도 썼다.
일월은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관광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고, 어느새 `명물'이 됐다.
일월은 2개월에 걸쳐 완성된 축문과 부적처럼 생긴 축문에 담긴 뜻을 해설한 글을 영어로 번역해 엘리자베스 2세 앞으로 보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제가 어떻게 영어로 편지를 쓰겠습니까. 마침 호텔 직원의 부인이 한국인이어서 도움을 받았죠."
일월의 정성은 대영제국의 여왕을 감복시켜 "고맙다"는 답장(사진)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1년 6개월 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한국을 찾았지만 태백산에서 기도생활을 하고 있던 일월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하산하던 날 방한 사실을 안 일월은 의전절차 때문에 알현이 불가능해지자 지난 20일 오후 여왕이 방문하는 이화여대로 찾아갔다.
여왕 수행원에게 편지 등의 `증거품'을 보여주고 믿음을 얻은 일월은 그동안 쓴 축문과 `돈을 주고' 번역한 편지 등을 전달하고 돌아섰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영국 왕실을 위한 기도는 계속할 겁니다."
일월의 눈은 여전히 해와 달처럼 빛났다.
[김승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