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일] '무명설움 잊지않고 열심히 연기할께요'
기사입력 1999년 04월 21일 15시 47분
"연기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이 좀 있었으면 카페라도 하나 했을 것이다. 홀어머니와 형제들은 평생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지금도 부평에서 보증금 200만원, 월세 12만원 짜리 단칸방에서 사신다."
탤런트 성동일. SBS TV 드라마 `은실이'의 극장건달 `양정팔'이 본명보다 더 유명해진 인물. 그의 성공담은 그가 출연해온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같다.
한시절 서울 대학로의 연극판을 떠돌았다.
"끝까지 무명배우였다. 배가 고플 때면 친구들이 와 밥도 사주고 2만~3만원씩 용돈도 주고 갔다."
대학로에 7년6개월이라는 세월을 바쳤다. 그 세월동안 그가 번 돈은 모두 120만원.
어머니는 엄동설한에도, 삼복더위에도 부평역으로 포장마차를 끌고 나갔다.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을 지켜보면 폐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5년간 사귀던 여자도 곁을 떠났다. 남자도 여자도 지겹게 돈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그녀에게 미안해 한다. 단 한번도 커피숍이라는 데를 가본 적이 없었으므로.
돈을 벌어야 했다. 벌기 위해 SBS 공채 탤런트 시험에 응시, TV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오산. 고생은 방송국에서도 매한가지였다.
연극식 연기는 치명적 결함이었다. PD들마다 그를 보면 짜증스러워하고 난감해 했다.
"SBS TV에서 만든 드라마 가운데 내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다. 90% 이상 출연했으니까. 그러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 사내1이거나 행인2였으니까."
그의 출세작이 된 `은실이'에서도 그는 처음 극장남자1이었다. 대사도 `형님' `알겠습니다' 같은 한마디였다.
대본을 받던 날 그는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서른번째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4월27일생이다). 이립(而立)의 나이에 어디 나무젓가락 한번 세워본 적이 없었다.
전남 화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곳 친구를 만나 며칠밤 소주병을 비우며 수첩에 사투리를 옮겨적었다. 요즘 드라마를 통해 듣는 그의 호남말은 이때 배운 것이다.
의상도 재래시장에 나가 직접 챙겼다. 빨간 양말, 빨간 넥타이, 빨간 내복, 빨간 머플러….
시청자들이 재밌어 했다. 극장남자에서 일약 `양정팔'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대사도 늘어났다. 기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가 막힐 노릇. 성공이었다.
"성공? 그런데 그게 뭘까. 이름좀 알려지고 CF 찍으면 성공한 것일까. 잘 모르겠다."
뜻밖이다. 그는 성공이라는 말에 때로 냉소적이 된다. 너무 오래 기다려왔기 때문일까. 다시 추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나는 정말 오래 기다려왔다. 비도 맞고 벼락도 맞아봤다.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별로 흔들리지 않고 있다. 다시 초심(初心)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이승호 기자]
성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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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인천생.
▲2남1녀 중 장남.
▲인천 광성고-유한공전 졸업.
▲85년 연극 입문.
▲SBS 공채 1기.
▲출연작 `자전거 타는 여자' `달팽이' 등 수십 편(모두 단역 내지는 조연이었음).
◇오랜 세월 비도 맞고 벼락도 맞아 초심을 지킬 수 있다는 성동일.＜최영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