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북경반점'] 정통 춘장 에 '인생의 맛' 담아
기사입력 1999년 04월 21일 15시 47분
식욕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중의 하나. 그러나 인간의 식욕은 단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닌, 문화적인 산물이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고,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혐오하고, 또 서구인들은 보신탕을 싫어하는 것도 문화적인 관습에 기인한다.
`북경반점'(김의석감독_영화세상 제작)은 바로 이러한 음식문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다만 한국땅에서 중국음식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이유는 누구나 짐작하듯이 자장면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음식이지만 한국음식으로 변화한, 이른바 `한국화'한 자장면이 음식영화를 탄생케 한 것.
영화는 처음부터 북적대는 `쭝국집'의 안팎을 스케치하듯 잡아낸다. 발디딜 틈도 없이 손님으로 가득한 북경반점의 홀.
`빨리 빨리'란 주방장(명계남)의 닥달소리를 따라 주방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가면 요리사들의 바쁜 손놀림이 시선을 붙든다.
면을 뽑는 라면(정중인)의 노련한 수타솜씨, 칼판(유연수)의 도마질, 빈 그릇을 설거지하는 틈틈히 양파를 까는 막내 택중(정준), 요리에 씌우는 랩에도 철학이 있다는 철가방 창원(김중기) 등.
북경반점의 호황은 자장면의 원료인 춘장을 정통방법으로 쓰기 때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한사장(신구). 한사장은 중국에서 찾아온 어릴 적 친구의 아들 양한국(김석훈)에게 정통춘장을 설명한다.
김의석 감독은 한 사장의 춘장에 대한 고집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북경반점의 주방 스케치에도 기교나 과장을 가능한 배제한 흔적이 보인다.
치솟는 불길, 끓는 기름 속에서 튀겨지는 각종 고기와 볶아지는 양파, 푸른 빛깔의 브로컬리, 붉은 빛깔의 연꽃장식 등 다양한 중국요리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지만 결코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춘장에 캬라멜 원액을 넣어 손님들의 입맛에 맞게 했다는 주방장의 직언에 한사장이 충격으로 쓰러진 뒤, `북경반점'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종업원들의 노력에 포커스를 맞춘 것도 김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과장된 기교나 편법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는 강변에 다름아니다.
`바베트의 만찬'이나 `음식남녀' 등 외국의 음식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때문이다.
개성넘친 배우들의 연기도 `북경반점'의 또다른 재미. `홍길동' 김석훈의 요리사 변신도 인상적이지만 `철가방'으로 열연한 김중기는 시종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정중인 정준의 코믹연기도 감초구실을 톡톡히 한다.
[전문가 평점]
★★★★★(최우수) ★★★★(우수) ★★★(괜찮은 수준) ★★(보통) ★(수준이하)
강한섭(서울예전 교수)_★★★★
유지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_★★★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