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44)
기사입력 1999년 04월 21일 14시 48분
1024년 전, 대륙은 한 불요불굴의 사내에 의해 제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기실 몇십 년 전부터 열국의 왕은 한 사내의 강권 아래 사고 전환을 강요당했고, 마침내 그들 위의 황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 1055년 전이었다.
하지만 대륙의 정신적 지배자인 법황이 자신과 동격의 권한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을 인정하기까지는 3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인내한 황제는 마침내 기회를 포착했다. 황제에게 가벼운 농담을 한 사내가 법황 직할령인 펠라론으로 도망친 것이다.
`신의 대행인인 법황의 권위를 인정하여 펠라론에는 절대로 발을 들여놓지 않겠으나, 중대 범죄자가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잠정조처'라는 이름으로 취해진 황제의 조처는 70만의 제국 군대를 동원하여 법황의 직할령인 신성 펠라론의 국경을 완전히 둘러싸는 것이었다.
이 인상적인 시위에 대하여 법황 역시 품위 있는 항복을 보내왔다. `그의 허물이 비록 높으나 우리 모두의 아버지인 신 아래 그 또한 당신의 형제인즉, 제국의 황제에게 아우의 허물을 용서하는 형의 관용을 바라겠소'라는 내용의 법황이 보낸 5매짜리 서신에서, 기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제국의 황제'라는 호칭 하나 뿐이었다.
법황이 공식 서한에서 이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제국과 황제는 동시에 법황으로부터 인정받았고 황제는 즉각 제국 군대를 후퇴시켰다. 그래서 시니컬한 역사학자들은 농담 삼아 제국을 `편지 한 장으로 성립된 유사 이래 최대의 정치 집단'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제국이 성립된 정확한 시기를 추적하려면 법황의 서신이 도달한 날로부터 207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제국력 207년, 대드래곤 라오코네스는 제국을 상대로 미노만은 자신의 영토라는 주장을 피력했다. 한 야사는 당시 황제가 라오코네스의 전갈이 도착했을 때 전령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고 전한다.
라스의 설명을 듣던 슈마허는 이 대목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어째서 선황제께선 그렇게 기뻐한 거지요? 황제의 제국 일부를 드래곤에게 뺏기는 것인데?"
라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봐요, 슈마허경. 한 청개구리가 세상을 상대로 이건 나의 제국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하겠소? 그 청개구리를 찾아가 `죄송합니다만 저기는 제 집이거든요'라고 주장하겠소? 아마도 밟아버릴 기분도 들지 않아 그냥 코웃음을 칠 거 아니오. 여기서 청개구리와 당신을 황제와 라오코네스로 바꿔보시오. 제국의 일부를 잃는 것은 중요치 않소. 대드래곤, 일몰의 왕, 위대한 라오코네스가 제국으로부터 자신의 영토를 인정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오."
"세상에…"
슈마허는 입을 쩍 벌렸다. 라스는 마치 자신이 대드래곤 라오코네스라도 된 것처럼 으시대며 말했다.
"그래서 황제는 즉각적으로 라오코네스의 주장을 수용했소. 물론 미노만을 라오코네스에게 하사한다는 식은 불가능했지. 그래서 제국과 라오코네스 사이에 오간 협정 문서는 상당히 모호한 용어들로 점철돼 있소.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소. 미노만은 라오코네스의 것, 그 외에는 전부 황제의 것."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