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잇단 사구에 날아가버린 대기록
기사입력 1999년 04월 18일 14시 16분
이제 1이닝 남았다.
3타자만 잡으면 프로통산 10번째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8회까지 1－0 해태의 리드.
9회초 마운드에 선 해태 선발 박진철의 머리속에는 `어떻게 해서든 1점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현대 선두타자는 한방 있는 외국인 선수 피어슨.
장타를 피하기 위해 초구에 몸쪽 낮은 코스로 찔러넣다가 피어슨의 다리를 맞혔다.
무사 1루. 그러자 포수 최해식이 황급히 마운드로 올라갔다.
"너무 기록을 의식하지 마. 노히트노런 신경쓰지 말고 힘빼고 편안하게 던져."
`노히트노런?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전광판을 흘낏 쳐다보니 정말 현대의 안타란에는 `0'이 새겨져 있었다.
투구에 집중하느라 노히트노런이란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박진철의 어깨가 갑자기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4번 이숭용의 타석때 바깥쪽으로 엄청나게 빠지는 공을 던져 무사 2루. 기록은 패스트볼이었지만 사실상 폭투나 다름없었다.
이숭용을 1루땅볼로 잡아내는 동안 2루주자는 3루까지 진루했고 다시 6번 김경기의 몸을 맞히는 바람에 1사 1,3루.
여전히 노히트노런이었지만 7번 박경완의 타석때 꿈이 깨져버렸다. 초구에 스퀴즈 번트를 댔던 것.
박진철은 떼굴떼굴 굴러오는 공을 글러브로 잡아 논스톱으로 포수에게 토스했으나 이미 3루주자의 발이 홈을 먼저 밟아 세이프.
안타 1개없이 내준 첫 실점이었다. 1－1 동점.
박진철은 1사 1,2루의 계속된 위기에서 8번 카날리를 2루수－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로 유도하고 9회초를 마무리지었다.
9회말 해태가 점수를 못내 결국 연장전. 1루측 불펜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박진철에게 이상윤 투수코치가 다가왔다.
"투구수가 많으니 교체를 해야겠다."
사실 박진철은 9이닝까지 소화한 경기가 프로 7년만에 처음이었고 126개라는 많은 공을 던진 적도 없었다.
동료들이 "잘 던졌다"며 악수를 청했지만 짐을 꾸려 덕아웃을 빠져나가는 박진철은 계속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광주＝김상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