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40)
기사입력 1999년 04월 15일 15시 36분
라이온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틀었다. 그랜드머더호의 고물 선교 쪽이었다. 그곳엔 덱체어에 앉아서 류트를 뜯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랜드머더호의 선장 킬리였다. 저 바다 위의 성채인 터릿 갤리어스를 지휘하는 선장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깡마른 사내. 거친 해적들 사이에 서 있는 킬리를 볼 때마다 라이온은 항상 고래 무리에 잘못 끼여 있는 황새치를 떠올렸다.
그 킬리 선장이 수평선으로부터 가득 번져오는 석양을 마주한 채 류트를 뜯고 있었다. 라이온은 그 연주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해적들이 소일거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해적은 송곳을 이용하여 자신이 죽인 적의 해골에 정교한 도안을 새겨넣고, 어떤 해적은 너덜너덜해진 널빤지에 나이프를 던져대고, 킬리는 저렇게 류트를 뜯는 것이다.
라이온은 뱃전에 두 팔을 괸 채 희미하게 들려오는 류트 소리에 집중했다.
잠시 후, 라이온은 깜짝 놀랐다. 킬리가 연주하고 있는 음률은 싱잉 플로라의 노래였다. 하지만 라이온이 놀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킬리는 똑같은 음률을 연주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싱잉 플로라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그 이상야릇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킬리의 연주가 갑자기 멈췄다. 킬리는 무릎 위에 류트를 세워둔 채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린 킬리와 라이온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킬리는 싱긋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두 사람은 배 사이의 바다를 넘어 서로 손짓을 주고받았다.
`감상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 라이온 선장.'
`싱잉 플로라의 노래 아닙니까?'
`글쎄. 별로 안비슷하군. 밤마다 들어서 흉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라이온은 눈 주위를 조금 찡그렸다. 킬리의 말대로 싱잉 플로라는 밤마다 노래를 불러왔다. 첫날처럼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라이온은 그 노래를, 외로운 사내에게 들려주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노래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선단의 해적들이 모두 게으른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한 채 나른해 하는 것은 계속된 순풍 항해 때문이 아니라 밤마다 들려오는 싱잉 플로라의 노래 때문인 지도 모른다.
라이온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밤마다 바로 옆에서 그 꽃의 노랫소리를 듣는 키는 어떤 기분일까? 라이온의 호기심의 대상인 키는 그 때 선장실에서 식스 1등 항해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식스는 탐탁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그 추측에 대한 확인을 받고 싶습니다. 정말 미노만으로 가는 겁니까?"
키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지만…무엇 때문입니까. 그곳에 괜찮은 기항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무엇보다도, 레보스호와 그 화물을 빨리 처분해야 될 텐데요. 레보스호의 선원들과 포로들의 동태는 불손한 편입니다. 조속히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식스는 절대로 `미노만에는 드래곤이 있다던데요?' 하는 식의 말은 꺼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건 너무나도 창피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키는 잔인무도한 해적이었다.
"게다가, 미노만에는 대드래곤이 있으니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