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벚꽃동산'-삶의 상실감 담담한 터치
기사입력 1999년 04월 15일 15시 36분
서울시립극단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공연 중인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전훈 연출)은 마음 속으로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서정적인 무대다.
라넵스까야 부인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추억이 시의 내재율처럼 감추어져 있어 `보는 연극이 아닌 음미하는 연극'으로 만나진다.
이번 서울시립극단의 `벚꽃동산'은 고전을 오늘날 우리 관객들에게 살아있는 현대극으로 보여준다. 무대 전체가 정갈하고 속도감이 있으며 지루하지 않다.
요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상실감을 도두라지게 표현, 관객들을 조용하게 울린다. 아름다운 것, 소중한 것들을 모두 포기한 채 전망없는 희망을 찾아 떠나는 극중인물을 통해 삶의 상실감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연출가 전훈은 인생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현실, 인간 간의 갈등, 존재론적인 가치 등이 심리적인 터치로 정갈하고 담백하게 그려냈다. 음향효과로 막을 열고 닫으며 장면전환까지 시도한 의도도 신선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살아있는 작품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라넵스까야역의 최형인은 차분하고 안정된 연기로 몰락하는 집안의 부인으로 등장, 과거에 묻혀사는 노부인의 비감을 정갈하게 그려냈다. 또 오빠 가예프역의 정동환은 영지의 매각이 알려진 순간에도 당구얘기나 하는 한심한 인물을 리얼하게 표현했다.
여기에 러시아 유학파인 여무영(삐쉭)은 활달하고 정열적이나 돈이 없는귀족을, 이항나(아냐)는 어리고 예쁜 라넵스까야의 딸을 개성있게 그려냈다.
정직한 상인 로빠힌을 맡은 강신구, 약간 바보스럽지만 친절한 라넵스까야의 양녀 바랴역으로 등장한 이미정 등 시립극단 신예들의 열정연기도 눈여겨 볼만했다.
여기에 박봉서 이남희 강애심 최슬은 극을 이어주는 브릿지 역할을 맛깔스럽게 소화내냈다. 김효선의 무대미술 김벌래의 음향도 인상적이었다.
젊고 패기 넘치는 젊은 연극인들과 노련한 중견들이 함께 만들어낸 시립극단의 이번 무대는, 우리 관객에 맞는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이었다. 29일까지 평일 오후 7시30분. 토 오후3시,7시30분. 일 오후 3시. (02)399－1645 [박용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