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킹 네드] 복권 당첨금 120억 가로채기 소동
기사입력 1999년 04월 14일 14시 51분
얼굴 알만한 배우라고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는 영국영화. 감독도 낯설고, 돈도 별로 들이질 않았다.
그러나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드글드글한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웨이킹 네드'(Waking Ned).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와 10개극장에서 개봉된 후, 현재 160여개의 극장에서 미국관객을 사로잡고 있는 영화다.
120억원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쇼크로 죽은 것을 알고, 이 당첨금을 가로채기 위해 희대의 사기극을 펼치는 두 노인의 포복절도 해프닝이 영화의 내용이다.
무대는 아일랜드의 작은 섬마을 툴리모어. 주인공은 재키(이안 배넨)와 마이클(데이비드 켈리)라는 노인.
재키는 매주 복권을 사며 꿈을 꾸던 중 어느날 툴리모어에서 복권 당첨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듣는다. 친구 마이클(데이비드 켈리)과 함께 당첨자를 찾아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재키.
온 마을을 다 뒤지다가 바닷가에 혼자 사는 네드가 그 복권당첨자임을 알게 되는데, 불행히도 네드는 당첨된 복권을 손에 쥔 채 죽어있는 게 아닌가.
복권을 그대로 버릴 것인가. 아니면 네드인 척 꾸며서 복권을 받아낼 것인가.
재키는 마이클에게 네드를 가장해 복권을 받아내자고 제의한다. 얼떨결에 재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마이클.
복권회사의 직원이 툴리모어에 찾아오자 재키는 그를 네드의 집으로 안내하고, 그 사이 마이클은 바닷가에서 수영하다가 벌거벗은 채로 네드의 집으로 달려간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느라 술을 마시며 네드인 척 하는 마이클. 마침내 복권회사 직원을 속여넘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 네드임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재키의 아이디어. 마을주민 52명을 모두 불러모아 `빅딜'을 제안한다. 당첨금이 140억원이니 이를 나누면 각각 2억3천만원씩 받을 수 있다면서. 그리고 죽은 네드도 아마 그걸 바랄 것이라면서.
소박한 섬마을 사람들은 꿈꾸듯 이 모의에 가담한다.
그리고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준 네드의 장례식을 엄숙하게 치른다. 이때 복권회사 직원이 장례식에 찾아오자 재키는 이를 마이클의 장례식으로 둔갑시킨다.
커크 존스 감독은 유쾌한 유머와 풍자로 관객을 모두 공범으로 끌어들인다. `풀 몬티' 등을 통해 알게 된 `차가운 영국식 유머의 최고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술궂은 노파가 복권회사로 전화를 걸어 모의를 일러바치려 할 때는 조바심이 나기까지 한다. 순수와 탐욕의 대비. 완만하게 펼쳐지던 사기극을 빠른 교차편집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이 장면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삶을 바라보는 넉넉한 여유. 행운을 똑같이 나눠가지려는 소박한 마음. 관객들은 기꺼이 이들의 거짓말과 사기극에 동조하면서 지친 영혼을 달랜다. 잔잔한 감동과 함께.(17일 시네코아극장)
[전문가 평점]
★★★★★(최우수) ★★★★(우수) ★★★(괜찮은 수준) ★★(보통) ★(수준이하)
강한섭(서울예전 교수)_★★★★1/2
하재봉(시인．영화평론가)_★★★
[이창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