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간판도 이제는 신토불이 시대
기사입력 1999년 04월 14일 12시 41분
의미도 불분명하고 읽기도 어려운 외래어 대신 화끈하고 톡톡 튀는 한글 간판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크게 늘고 있다.
한글 간판은 독특하고 부르기도 편해 신세대들에게 단연 인기.
`니가 사' `한번 쏘는 날' `배 터져 죽는 집'은 건국대 주변의 술집 간판들이다.
연세대 앞의 `거품방'은 맥주 전문점이고, 소주방 이름은 `술 나와라 뚝딱'이다.
홍익대 근처의 `골 때리네', 경희대 앞의 `그냥 거기'도 소주방 이름으로 튄다.
여대생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미용실도 한글 간판이 돋보인다.
패션 1번지 이화여대 앞에는 `머리사랑' `가위손'이 있다. 중앙대 앞의 `여기서 머리할까', 성균관대 앞의 `새치와 꺼먹머리', 서울대 앞의 `어디 한번 볶아 볼까', 한국외국어대 부근의 '깎아볼까' 머리방 등도 재미있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남학생들의 출입이 잦은 당구장에서도 재치있는 간판을 찾아볼 수 있다.
경희대 앞의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 단국대 주변의 `구슬모아', 건국대 부근의 `공 때리네'가 대표적인 예.
중앙대 앞의 `밤새지 마란 말이야！'는 PC방 이름이다.
게임 삼매경에 빠져 밤을 하얗게 지새는 사람들로 가득한 PC방에 개그맨 김국진의 유행어를 역설적으로 `차용'한 작품.
경희대 앞에 있는 식당 `꼬르륵'도 쉽고 편한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글간판 바람'은 지방 대학가에도 거세게 불고 있다.
전남대 앞에는 라면전문점 `그 집앞을 지나노 라면'과 카페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부르면 누워자고'가 걸작으로 꼽힌다.
인하대 부근의 `아무데나'와 청주 서원대 주변의 `어디로 갈까나'도 학생들이 제법 알아주는 이름들이다.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윤승현씨(35)는 "한글 간판을 내건 집들이 장사가 잘돼 이참에 쉬운 우리말로 상호를 바꿀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한글 간판 인기에 대해 중앙대 국문과 이주행 교수는 "대학생을 포함한 `한글세대'가 경제 주도권을 갖게 되면서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홍원기 명예기자(중앙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