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일기] 아프리카 족장과의 만남
기사입력 1999년 04월 12일 14시 27분
기자를 나이지리아 동부 아남브라주（州）의 추장집 응접실로 안내한 현지 가이드는 잠시후 이보족의 족장（族長）이 나타나자 근엄한 표정으로 소갯말을 했다.
"이 지역의 절대적인 권력자이시며 나이지리아 전체로 봤을 때도 정치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계신 위인으로…".
잠시 후 마실 게 들어왔다.
생수며, 각종 탄산음료며, 캔맥주며….
음침한 분위기가 갈증을 부추겼다.
선택의 여지없이 캔맥주를 잡았다.
뱃속을 자꾸 알코올로 소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쟁반위의 녹색 열매도 분배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게 뭐란 말인가.
먹자니 겁이 나고, 안 먹자니 결례인 것 같고.
느닷없이 영화 `레이더스'에서 사람들이 살아있는 벌레를 삼키던 장면이 떠올랐다.
드디어 내 차례.
`아푸파'라는 녹색과일을 집어 이상한 소스에다 찍어서는 족장을 따라 한 입 베어물었다.
설익은 가지 같기도 하고, 자라다 만 참외 같기도 했다.
열매는 덤덤하고 소스는 매운 게 맛이 아주 고약했다.
하지만 족장이 싫어할까봐 맥주로 입을 헹궈가며 억지로 다 먹었다.
족장이 "더 먹어라"고 해서 예의상 하나 더 집긴 했지만 차마 입에 대지는 못했다.
족장집에 들어선 지 1시간쯤 지나서였다.
마침내 기대했던 아프리카 특유의 의식이 시작됐다.
족장이 우리들의 행운을 빌어주겠다고 했다.
족장의 탁자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족장은 왼손으로 나의 오른손등을 잡아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한 뒤 분필덩어리 같은 흰색 돌로 손바닥을 문지르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무슨 소린지 도통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이 `흰둥이' 녀석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있기를 기원한다"는 소리였을 게다.
주문이 끝나자 족장은 그 돌을 나의 손바닥에 얹은 채 주먹을 쥐어주었다.
돌을 말아쥔 채 자리로 돌아왔다.
족장은 집안 구석구석 방문객들을 데리고 다니며 안내를 한 뒤 마당에서 작별을 고했다.
그 길로 곧장 청소년팀 숙소로 달려가 조영증 감독을 만났다.
그리고는 족장에게서 얻은 흰 돌을 꺼내 조감독의 손바닥에 문지르면서 빌었다.
"말리를 3대0으로 이겨 조 3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러나 허사였다.
그 주문은 족장이 외워야만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남브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