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유치막후비화]유치활동 희망걸린 카타르 예선
기사입력 1999년 04월 12일 14시 26분
93년 10월,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전이 열렸다.
나는 이 예선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최종 예선전을 통과하여 미국 본선에 진출하면 2002년 월드컵 유치에 힘이 실려 희망이 있지만, 만약 우리가 탈락하고 일본이 나간다면 월드컵 유치를 추진하기엔 어려운 분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일본은 이미 3년전에 유치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우리로서는 유치위원회를 만들자고 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최종 예선전에 오른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서 일본, 사우디, 이란, 이라크, 북한등 6개국이었다.
예선전 개최지로 카타르가 선정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불리한 소식이었다.
출전국의 위치와 날씨등을 고려하면 말레이시아나 홍콩이 적당할텐데 FIFA는 아무런 사전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카타르를 개최지로 정해버리고 우리에게는 통고만 해왔다.
사우디, 이란, 이라크가 모두 중동국가인데 우리에게 불리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김상진 협회 부회장이 일본협회측에 전화로 문의해 보았더니, 일본측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개최지 결정 문제는 너무나 우리를 무시한 처사여서 그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FIFA 규정집에도 분명히 당사자간 합의토록 되어 있었다.
김상진 부회장을 FIFA에 보내 항의했다.
우리가 집요하게 항의하자 심판진은 전원 유럽인으로 하기로 결정됐다.
이것만 해도 우리에겐 큰 성과였다.
카타르로 가기전 국제 정보에 밝다는 한 인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국은 이미 예선에서 탈락하게 되어 있다"고 했다.
어쨌거나 카타르에서 한국팀은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스포츠조선' 애독자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듯이 우리가 일본에게 0대1로 졌을 때는 앞이 캄캄했다.
서울의 협회 건물에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자폭하라'고 씌여 졌고 심지어 돌이 날라들기도 했다.
어느 신문에서는 이날을 "국치일(國耿日)"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일본 열도는 마치 미국 본선에 진출한 양 환호의 물결로 가득했다.
그러나 운명의 10월28일.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승부 조작을 막기위해 한국@북한, 사우디@이란, 일본@이라크 세 경기가 같은 시간에 열리게 되었다.
사우디는 본선 진출이 확정적이었고 한국과 일본은 상대를 꼭 이겨야 했다.
특히 한국은 골 득실차에서 일본보다 뒤졌으므로 많은 점수로 승리해야 했다.
그런데 전반이 끝났을 때 한국은 여전히 북한과는 0대0.
일본은 계속 한 골씩 이라크를 앞서가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태였다.
한국은 후반들어 있는 힘을 다해 밀어붙여 북한을 3대0으로 이겼으나, 일본이 이라크를 이기면 아무 의미도 없었다.
우리 선수들이 이기고도 어깨를 늘어뜨린 채 운동장을 나오려는 순간 이라크가 동점골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날아 왔다. 그때의 감격이란!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얼싸안고 기뻐했다.
일본은 결국 예선전에서 탈락하고 우리와 사우디가 최종예선을 통과한 것이다.
일본선수들은 이라크에 2대1로 마지막까지 이겨 있었으나 경기 종료 수초전에 통한의 코너킥으로 동점이 되자 모두 운동장에 주저 앉아 버렸다.
우리에게는 기적인 이 순간은 일본에게는 "도하의 비극"으로 길이 기록되게 되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운명의 여신이 우리를 향해 미소를 보내기 시작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월．화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