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일기] 아프리카 추장과의 설레는 만남
기사입력 1999년 04월 11일 14시 20분
아프리카 밀림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대부분 그 지역의 추장이 등장한다.
`수리수리 마수리 방망이'같은 요상한 지팡이, 동물의 뼈와 새의 깃털을 재료로 한 화려한 장식, 때로는 끔찍하기까지 한 희한한 전통의식들….
여하튼 절대권력을 가진 추장 주변에는 별난 것들이 참 많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어느 영화든 추장이 등장하는 과정은 거의 흡사하다는 점이다.
탐험에 나선 백인이 밀림을 헤매다가 원주민에게 붙들려 어디론가 끌려가는 곳, 그 곳이 추장의 집이요, 거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추장이다.
그 추장을 어제 만났다.
원주민들에게 붙들린 게 아니라 내 발로 찾아갔다.
99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에누구조직위원회에서 각국 특파원들의 `추장 알현'을 시도한 끝에 운좋게도 추장의 허락을 받아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만사 제쳐놓고 따라나섰다.
오전 10시반 숙소 조디악호텔이 위치한 에누구 레인저스가（街）를 떠났다.
황인, 백인, 흑인 등 20여명의 온갖 인종들을 실은 미니버스는 작렬하는 적도의 뙤약볕을 가르며 1시간을 꼬박 달린 끝에 아남브라주（州）의 한 마을 공터에 멈춰섰다.
추장집 뒷마당이라고 했다.
한데 밀림도 아니었고, 창을 든 원주민도 없었다.
알고보니 한 마을을 지배하는 추장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동부 에누구와 아남브라에 분포해 있는 이보족을 이끄는 족장이었다.
엉덩이 둘레가 2m도 넘을 것 같은 젊은 여자가 나와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족장의 딸이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를 응접실로 안내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20평쯤 돼 보이는 널따란 응접실엔 30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소파들이 놓여 있었다.
정면 족장석 옆에 세워져 있는 독수리 장식의 긴 황금색 지팡이가 무척 위엄있게 느껴졌다.
나무냄비와 녹색 열매가 가득 담긴 쟁반이 차례로 들어왔다.
한참 뒤 조직위측 안내원이 "족장님이 납신다"고 알려왔다.
다들 법정에서 재판관을 맞듯 `기립'했다.
도대체 어떤 분일까.
분위기에 눌려서인 지 가슴이 다 쿵쾅거렸다.
잠시 후 웬 절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채와 연결된 족장석 왼쪽의 문을 통해 족장이 나타났다. [계속]
[아남브라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