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서세원-산뚫고 물건너 인생은 기찻길
기사입력 1999년 04월 07일 14시 31분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길을 만들지만, 인간들은 멀리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길을 만든다고 한다.
수많은 내 기억 속의 길 중에 가장 큰 그리움으로 남는 길은 `기찻길'이다.
역장이셨던 아버지 때문에 국민학교 때 8번, 중학교 땐 5번의 전학을 해야만 했다.
그 당시에 고속도로나 버스는 제구실을 다하지 못했고, 기차만이 최고의 운송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기차의 화물칸에 이삿짐을 꾸려넣고 출발하던 어릴 때의 기억은 언제나 설레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 임지를 바꿔야 했던 아버지로 인해 조금 정이 들만하면 그 동네를 떠나야만 하는 것이 못내 섭섭하기도 했다.
그런 어릴적 설레임과 아쉬움으로 얼룩져 있는 곳이 기찻길이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봄동산에 올라 눈앞에 여러 갈래로 꼬불꼬불 펼쳐진 기찻길을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다음에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 궁금해하며 기찻길을 따라 내 상상의 나래를 먼저 실어 보내기도 했다.
항상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인생이 짐스럽지 않다고 한다.
그만큼 욕심과 미련을 버리고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일까?
끝없는 평행선으로 펼쳐진 기찻길은 나에게 또다른 생각을 하게 하곤 했다.
언제든 서로 만나는 선은 다시 갈라질 수밖에 없지만, 영원히 평행선을 긋고 있는 기찻길만큼은 나의 인생길에 언제나 함께할 것이라고 말이다.
살아가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현재에 안주하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몇십년을 같이 살아온 사람을 떠나보내거나, 내가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마치 기찻길처럼 말이다.
시간이 되면 기찻길을 따라 떠나야만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해야만 한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설레임을 갖고, 현재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한 산을 뚫고, 강물을 옆에 끼고, 들판을 힘차게 달리는 기찻길 처럼 나의 인생은 달리고 또 달린다.
다음에 도착할 기차역에 대한 꿈을 안고…. [방송M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