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일기] 화폐가치 낮아 돈보따리 필요
기사입력 1999년 04월 07일 14시 10분
이곳에선 돈 쓰는 재미가 묘하다.
화폐의 단위와 모양이 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양（量）이 기분을 야릇하게 만든다.
나이지리아의 화폐단위는 나이라（NAIRA＝100KOBO）다.
1달러가 90나이라 정도로 계산되니 1나이라는 약 13원.
그런데 문제는 나이라의 최고단위가 50（약 650원）이라는 점이다.
6만5천원짜리 옷을 하나 사더라도 50나이라짜리를 100장이나 내야한다.
2천만원짜리 자동차를 산다고 가정할 때 50나이라짜리를 자그마치 3만770장 준비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부피로 따져 쌀가마니로 하나 가득이다.
만일 그게 10나이라짜리라면….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들 그렇게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라고스에서 이곳 에누구로 넘어올 때였다.
현지 여행사에서 스무명이 넘는 한국 기자들의 국내선 비행기 티켓을 한꺼번에 사기 위해 50나이라짜리 두 가방을 가지고 공항엘 갔었다.
정작 문제는 그 돈을 하나하나 헤아려야 한다는 점이다.
돈을 헤아리는 기계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지폐가 너덜너덜 `걸레'라 별 효과가 없다.
결국 그 돈을 손으로 헤아리는데 40분이 걸렸다.
무역업을 하는 한 교민의 말은 더 기가 막히다.
"대금 결재하는 날엔 직원 한 명을 따로 빼서 은행에다 파견을 시킵니다. 돈 헤아리는 데만 한 이틀 걸리거든요. 그렇다고 현장입회를 안할 수도 없고."
이러니 돈 헤아리는 중간에 누가 말이라도 시켜 헷갈리게 하는 날엔 자칫 `살인사건'이 날 지도 모를 일이다.
보관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돈 쓸 일이 생겨 300달러 정도를 환전하면 그 때부터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50나이라짜리 100장묶음을 대여섯 뭉치나 가지고 다녀야 하니.
그럴 때면 돈이 아니고 숫제 `웬수'다.
때문에 "큰 돈을 지불할 때는 일일이 헤아리지 말고 근으로 달아서 계산하자"는 우스개까지 나올 정도다.
웬만하면 화폐개혁을 할만도 하건만 화폐제조비가 많이 들어 돈을 안 만든다고 한다.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돈이 지저분하다는 점이다.
열장 가운데 여덟장은 땟국이 줄줄 흐른다.
쓰레기를 치우다가 말고 앞치마에 손 쓱쓱 닦고 김치를 찢어먹을 정도의 비위라도 나이라 100장 헤아리고 나면 손을 씻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오는 5월 29일 나이지리아에는 오바산조 정권이 출범한다.
하지만 화폐개혁이 단행된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앞으로도 그냥 돈을 보따리 보따리 싸들고 다니며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에누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