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왕과 비']비운의 왕 단종-마지막 순간 재현
기사입력 1999년 04월 05일 15시 28분
"밥 안묵었나? 도대체 힘들이 없어!"
봄이 한창인 지난 주말 경기도 용인민속촌. KBS 1TV 화제의 대하드라마 `왕과 비'의 촬영현장.
금성대군의 역모가 발각되며 관련자들이 굴비꿰듯 잡혀와 목이 떨어지고, 단종이 마침내 한많은 짧은 생애를 마감하는 날.(방송 18일)
사극 연출의 생명력은 `역동감'. 어영부영 지시했다간 역모 관련자들을 다루는 신에 사실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김종선PD가 눈에 잇따라 쌍심지를 켠다.
포승줄에 묶여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맨발로 잡혀오는 연기자들은 `죽을 맛'. 수차례의 NG. 마침내 한 `죄인 연기자'가 울부짖는다. "나 발바닥이 훌러덩 까졌어!"
망나니역의 이공준. 키 1m84, 85㎏, 우락부락한 눈에 송곳같은 턱수염. 큰 칼을 휘휘돌리자 으시시한 분위기가 절로 난다.
"얍", "으랏챠". 그의 기합소리에 생명들이 봄꽃처럼 떨어진다.
다음신은 가장 주요한 단종의 `죽음'. 단종의 죽음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사약을 받았다, 목졸려 죽었다는 설 등.
정하연작가는 사약을 앞에 둔 단종을 나졸 한명이 달려들어 목을 졸라 죽이는 것으로 설정했다.
"단종 어디 있나?"
금부도사와 나졸들은 준비 끝. 그런데 죽어야할 단종이 보이지 않는다.
"너를 사랑해∼. 둥가 둥가."
흑룡포 차림의 단종 정태우는 촬영장 옆에서 어깨까지 흔들며 입을 뾰족히 한 채 S.E.S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촬영 차례가 오지않자 지루함을 달래고 있던 중.
단종의 `죽음신'은 복합된 감정이 표현돼야 한다. 왕의 위엄을 잃지 않는 의연함에 죽음을 앞에 둔 어린아이의 두려움까지 연기해 내야한다.
정태우는 연기 10년째의 베테랑. 그의 연기는 프로다. 그래도 "죽는 연기를 하려니 아침부터 기분이 찜찜했다"고 털어 놓는다.
단종 정태우가 멍석 위에 조용히 앉는다. 그리고 부왕에게 마지막 큰절을 하고 일어나려다 흐느낀다. 그 뒤로 다가간 나졸. 우악스런 손으로 단종의 목에 줄을 감고 힘껏 조른다.
단종의 얼굴이 점차 피빛으로 물든다. 허공을 향한 초점잃은 눈동자.
겨울 솜옷을 지어보낸 중전 송씨에 대한 애틋한 사랑, 왕위를 빼앗은 숙부 수양대군에 대한 원망, 권력의 대한 무상감이 묻어나는 듯한 눈빛.
단종이 애끓는 삶을 마감한 것은 그의 나이 17세. 지금으로부터 꼭 542년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