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포라리스 랩소디(31)
기사입력 1999년 04월 05일 15시 28분
키 드레이번은 분노했다. 그는 빈 손으로 돌아온 라이온과 식스를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시끄러워서 못가져왔다는 말에는 더욱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라이온은 심히 억울하다는 투로 키 드레이번을 보았지만, 그가 말한 변명들은 키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에, 그게 꼭 시끄러워서만은 아니지요. 에, 저는 대포 포성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단 말입니다. 어, 음. 그런데 그 비명소리라는 것이, 흠흠. 참, 거 뭐랄까…"
"뭐?"
라이온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목졸린 여자 같단 말입니다.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어요."
키는 한참 동안 라이온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그 옆에 있던 식스에게 말했다.
"식스. 율리아나 왕녀를 데려가."
"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가르쳐줘야 하나！ 여자는 싱잉 플로라의 소리를 못 듣는다. 그러니 율리아나 왕녀에게 들고오도록 하란 말이다！"
식스와 라이온은 황급히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선장실을 빠져나왔다.
라이온은 으르릉거리며 눈에 들어오는 어떤 선원이라도 붙잡아서 반드시 시비를 걸어－너 왜 눈이 두 개야！－화풀이를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율리아나 왕녀가 감금되어 있는 선실까지 걸어가는 동안 한 사람의 선원도 만나지 못했다.
"이 놈들이 다 어디 처박혀 있는 거죠?"
"전부 메인 마스트 아래 모여 앉아 벌벌 떨고 있을 걸세."
"젠장. 이번에 붙잡은 것은 너무 골치 아픈 재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싱잉 플로라가 있을 줄은 몰랐지."
"아니, 그것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식스는 라이온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라이온은 얼굴을 찌푸려 미간에 세로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일단, 여자가 있다는 것 때문에 오닉스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듣자니 놈은 무기를 휴대하고 자유호에 올라왔다면서요? 비록 율리아나 왕녀가 목표이긴 했지만, 이곳은 키 드레이번의 배인 기함 자유호입니다. 얼렁뚱땅 넘어가긴 했어도 그건 예삿일이 아닙니다."
식스는 라이온의 표정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것이다. 라이온은 계속 말했다.
"그리고, 그 여자라는 것이 카밀카르의 삼왕녀고 필마온 기사단장의 아내가 될 여자입니다. 카밀카르의 해군이나 필마온의 갈가마귀들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둘과 원한 관계를 만들었다는 것,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요."
"그만. 키 드레이번이 결정한 일이야. 그리고 바다의 신사가 원한을 두려워하나."
"제기랄, 여－론이라는 것이 있잖습니까, 여－론！"
라이온은 여론이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는 것이 퍽 자랑스럽다는 듯 그 단어를 길게 발음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식스는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라이온은 우쭐거리며 말했다.
"필마온은 신부를 뺏긴 얼간이 취급당할 겁니다. 여－론이 그렇게 될 거라고요. 놈들은 단순한 원한이 아니라 그런 여－론에 시달리는 것에 더 화를 낼 겁니다. 카밀카르도 마찬가지지요. 왕녀를 빼앗긴 나라의 국민들의 여－론이 어떨 지 생각해 보시라고요."
"그만해. 다 왔네. 왕녀가 듣겠어."
식스는 방문을 가리켰고 라이온은 입을 다물었다. 식스는 방문의 열쇠를 연 다음, 퍼뜩 생각난 것처럼 라이온을 바라보고는 방문을 노크했다. 라이온이 잠시 감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예절도 아슈? 그래서 `여론'이라는 단어를 말할 줄 아는 라이온과 예절바른 식스는 퍽 자랑스러운 태도로 왕녀의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율리아나 왕녀의 방으로부터 식스의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와, 왕녀님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