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유치막후비화] (2)책상서 잠든 유치안 발견
기사입력 1999년 04월 05일 14시 24분
2002년 월드컵 유치 문제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전의 일이었다.
93년 1월 축구협회장에 취임한 후, 업무 파악을 하면서 월드컵 유치안이 책상안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태우 정부 아래서 한때 월드컵 유치가 형식적이나마 논의 된 일이 있다는 것이다.
아벨랑제 국제축구연맹(FIFA)회장이 90년 5월 로마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2002년 대회는 중국이나 일본, 한국등 아시아 국가중에서 처음 열릴 것으로 본다."고 예상하면서 "나는 그중에도 통일된 한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FIFA 회장직을 기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측에서 일을 추진 하려고 알고보니 당시 일본이 이미 수년전부터 유치를 위해 치밀한 물밑작업을 해 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나도 나중에 이탈리아 체육회 회장으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일본은 90년도에 이미 월드컵 준비 조사단이라는 것을 구성, 당시 이탈리아 월드컵의 준비사항을 조사해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벨랑제 회장도 일본 개최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동안 야구나 스모(일본 씨름)에만 열중해온 일본이 J리그의 창설, 2002년 월드컵 유치계획등을 추진하게 된 경위는, 자세히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일본 지도층이 축구의 국제성을 깨닫게 되고, 축구를 외교 또는 국제교류의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고려가 시발점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불이 꺼져가는 일본 축구의 열기를 되살려 보겠다는 일본 축구 관계 인사들의 열의와, 국제 마케팅에서의 축구의 위력에 눈을 뜬 일본 대기업의 계산이 손을 잡은 것으로 풀이 되기도 한다.
당시 우리나라의 축구계도 침체에 빠져 있었다.
아시아의 축구 강국으로 자부하던 한국이 일본에게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일본은 이렇게 하는데 우리는 무엇들하고 있느냐…."는 한탄의 소리가 자주 들렸다.
그러나 한국이 2002년 월드컵 유치 경쟁에 뛰어들어 보지도 못하고 일본의 독주를 허용하게 되면, 한국 축구의 장래는 매우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 국제 스포츠계의 흐름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어떤 인사는 "꿈에서 깨어나시오. 때는 이미 늦었소"라고 말했다.
이처럼 월드컵 유치는 시작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받아야 할 사람으로부터도 외면을 당하는 가운데 그 첫발을 떼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축구협회장으로 취임한 이상, 유치 활동을 열심히 해보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어렵겠지만 하는데까지는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나의 심경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