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일기] 조감독 '암흑속 훈련' 기막혀
기사입력 1999년 04월 04일 15시 06분
3일 조영증 감독은 두 번 웃었다.
이날은 한국팀이 예선 3경기를 치를 에누구의 은남디 아즈키웨스타디움서 적응훈련을 하는 매우 중요한 날.
팀당 딱 한 번 밖에 없는 기회였다.
당초 그라운드는 4일 오후에 D조 4개팀이 1시간씩 차례로 쓰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한국측에서는 좀더 알찬 훈련을 위해 3일전 FIFA（국제축구연맹） 대표자 미팅서 이날 훈련을 허락받은 것이다.
한국팀의 훈련시간은 오후 7시부터 1시간.
기자단이 라고스에서 넘어와 호텔에다 짐을 던져놓고 막 스타디움을 찾은 시간이었다.
한데 선수들이 얼굴조차 분간하기 힘든 컴컴한 그라운드에서 공을 차고 있는 게 아닌가.
운동장 전기담당 직원이 퇴근하는 바람에 배전실 문이 잠겨 라이트를 켤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조감독은 기가 막힌 듯 웃고 있었다.
팀에 합류해 있는 한국체육과학연구소의 신동성 박사가 운동장 관계자들을 향해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불을 켜라"고 호통을 치고 나서야 본부석쪽 2개의 라이트에 불이 들어왔다.
그 때가 7시25분.
선수들은 편을 나눠 미니게임을 했다.
15분쯤 뛰었을까.
그라운드에선 차마 웃지못할 일이 또 벌어졌다.
정전（停電）.
그 큰 그라운드가 순식간에 암흑의 공간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아프리카의 하늘엔 별들만 무심히 반짝이고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정전이지만 세계대회를 치러야 할 그라운드까지 무방비 상태일 줄이야.
조감독이 또 한번 신음에 가까운 웃음을 "허허" 내뱉으며 어둠속의 선수들을 향해 한마디 던졌다.
"얘들아, 그만 가자."
동네축구가 따로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