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조영남-좋은 영화에 관객이 없다
기사입력 1999년 04월 02일 14시 30분
나는 대한민국이 좋다.
내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 서두에 언제나 `여기는 대한민국 KBS 체험 삶의 현장'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일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만큼 싫어 질때가 있다.
혐오스럽고 증오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는 얘기다.
가령 백주 대낮에 교통순경한테 대드는 무례한 놈을 볼 때, 표를 살 때 옆에서 삐져나와 새치기하는 무례한 젊은이를 볼 때 그렇다.
최근 나에게는 일관적으로 나를 화나게 하는 대한민국이 있었다.
그걸 얘기 하겠다.
영화가 화근이었다.
몇달 전에 일본영화가 우리네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한일간의 문화교류나 침투에 관한 얘기가 아니니 걱정 놓길 바란다.
일본영화는 대한민국에 매우 선별적으로 들어왔다.
즉 권위있는 세계영화제에서도 공인받은 영화였다.
나는 기대감으로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우선 거장 구로사와의 `가게무샤'부터 가 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매표구 앞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극장 안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아! 사극이니까, 나온지 오래된 영화니까 그렇겠지'하고 그냥 넘겼다.
이어서 헐레벌떡 찾아간 곳은 최근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일본청년 다케시의 `하나비'가 상영되는 극장이었다.
역시 영화관 안은 썰렁했다.
"일본 영화라서 거부감을 느끼는 걸까?" 쯤으로 또 넘어갔다.
일견 일본영화의 국내 침투가 호락호락 할것 같지 않아 마음이 놓이긴 했으나 이토록 완숙한 영화에 관람객이 없다는 건 좀처럼 이해가 안되었다.
그 다음에 이어서 본 것이 금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대의 이변을 일으킨 이태리 영화 `인생은 즐거워'였다.
아!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극장안이 뜨문뜨문 역시 썰렁한 것이다.
일본 영화도 아닌데 이태리 영화인데….
그들이 2차대전을 일으켜서 그 반감으로 사람들이 구경을 안 오는 건가.
세상에 영화를 이 이상 더 아름답고 예쁘고 장중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 이상 기막힌 스토리가 어디에, 기막힌 연기 연출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신문 한 구석에서 `레미제라블' 신판이 상영된다는 걸 알았다.
그 유명한 `정복자 펠레'의 연출팀이니 얼마나 근사하랴 싶어 부랴부랴 달려갔다.
씨네하우스 예술관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는데 위층에 한쌍 아래층에 한쌍이 관람객의 전부였다.
위층의 한쌍중에 남자가 본인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장발장 영화 중에서는 단연 압권이었었다.
그런데 관람객은 단 네명이었다.
그 옆 `쉬리' 상영관에서 나오는 인파는 가히 중공군 수준이었다.
`아! 싫다. 대한민국이 싫다'.
아침에 어느 잡지에서 기형도가 생존시 여자친구에게 쓴 엽서 석장을 읽고 기형도의 참 존재를 모르는 대한민국이 싫어서 이따위 글을 썼다.
P.S（추신）. 감히 말하건데 기형도는 이 상, 보들레르 랭보, 애드가 알란포에 사실상 맞 먹는다.
`가게무샤 `하나비' `인생은 아름다워' `레미제라블'이 `쉬리'와 맞먹듯이（?） 말이다.[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