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강우석-'동물의 왕국'서 인생을 배운다
기사입력 1999년 03월 29일 15시 30분
얼마전 출산한 아내가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보고오더니 막 웃었다.
"왜 웃냐?"고 묻자 아내는 "왼손을 머리에 올려놓고 잔다"는 것이었다.
평소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나는 왼손을 머리에 올려놓고 자는 버릇이 있다.
아기가 벌써부터 한국영화 제작과 배급에 대해 고민하는 건 아닐텐데 참 희한한 일이다.
아들 윤성(倫誠)이를 보면서 나는 그에게 펼쳐질 무한한 인생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인생도 다시 생각해봤다.
혹자는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삼국지를 보면 인생을 안다'고 하지만 나는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인생을 배운다.
나는 초저녁에 TV에서 하는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를 꼭 본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못볼 때엔 녹화를 해서라도 본다.
먹고 먹히는 세계,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 등 그 모든 것이 우리 인생사와 너무나 닮았다.
깜찍한 부엉이가 무시무시한 구렁이를 죽이는 걸 보면 겉보기로 남을 판단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체격이 작다고 또는 옷차림이 허름하다고 사람까지 무시하다간 큰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동물에 비유해 부른다.
`인간 하이에나'라든가 `쥐새끼'란 표현을 듣는다면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신세대 축구스타 이동국을 보고 `라이언 킹'이라고 부르는데 참 좋은 별명인 것같다.
사자는 밀림의 제왕이다. `동물의 왕국'의 지존(至尊)이다.
하지만 `동물의 왕국'을 자세히 보다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한다.
`사자같은 하이에나는 없지만, 하이에나같은 사자는 있다'는 것이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초반 독백부분에선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이라며 하이에나를 무척 미화해서 묘사하고 있는데 `동물의 왕국'을 보면 하이에나처럼 치사한 동물이 없다.
남이 사냥한 먹이를 가로채 열나게 도망가선 피까지 핥으며 맛있게 먹는가하면, 시체도 식탁에 올려놓는게 바로 하이에나다.
하지만 사자중에도 하이에나같은 말종들이 종종 있다.
하이에나처럼 남이 먹던 고기를 뺏어가고, 동료사자 새끼를 죽이고, 부상당한 암사자를 죽이는 못된 사자들을 TV에서 종종 본다.
물론 내가 추구하는 사자상은 이런 게 아니다.
위엄과 강인함을 두루 갖춘, 또 `밀림의 왕자'나 `라이언 킹'같은 만화영화에서 본 것처럼 정의감 넘치는, 그런 사자가 되고 싶다.
나의 아기가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사자같은 인물이 되려면 나부터 사자가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왼손을 머리에 올리고 쌔근쌔근 자고있는 아기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영화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