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서세원의 세상살이 - 어린시절을 그리며
기사입력 1999년 03월 28일 15시 11분
겨울에 딸기를 먹고, 봄에 귤을 먹는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사람의 입맛은 예민하고 투정이 심해서 계절도 타고, 분위기도 타고 기분도 탄다.
봄이되서 일까. 입맛이 없다고 수저를 먼저 내려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린시절의 봄은 입맛 타령을 하며 음식을 끼적거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짓이었다.
`이런 춘궁기에…'하는 어머님의 말씀 한마디면 이것도 감지덕지하다는 감동스런 표정으로 밥상을 마주해야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시골 밥상위에 단골 손님은 짠지와 쑥국 등의 음식이었고 뭐니뭐니해도 밥상위의 하이라이트는 할아버지 밥상위에나 오르는 간고등어였다.
장날, 지게를 지고 장터에 나간 할아버지가 지게 뒤켠에 대롱대롱 매달고 들어오셨던 간고등어, 3년을 그냥 놔둬도 절대 썩지않을 듯이 소금을 있는대로 절여만든 간고등어, 이를 한토막쯤 굽는 날이면 온집안의 철없는 아이들은 초긴장상태에 들어간다.
부엌을 들락달락거리며, 코를 킁킁거리며 손톱만큼 이라도 떨어지는 뭔가가 없나하는 기대를 하게 되고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 할아버지의 밥상위에만 오르는 모습을 보면 아쉬움에 한숨쉬며 애꿎은 밥상에 화풀이를 한다.
하지만 매정하게 할아버지는 뼈까지 오독오독 씹어먹음으로써, 우리의 한가닥 실날같은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우리는 속으로 다짐을 한다. 빨리 커서 잘나가는 생선장수를 하리라고….
`어디에서 누가 굶고 있다'는 보도가 수없이 나가도 일단 내 배가 부르면 한입밖에 안먹은 햄버거도 쓰레기통에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계절감각을 잃고, 풍요로움에 젖어 갈수록 까다로와지는 우리의 입맛, 향수와 동경으로 양념하여 다시 찾을 순 없을까?
우리의 입맛은 집요하다. 낯선음식의 맛보단 길들여진 맛에 대해 그리움을 느끼고, 넘쳐나는 음식보다 부족하다 싶은 음식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
지금 이순간. 진정한 미락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면, 우리의 가벼운 입맛부터 고쳐보자.
따뜻한 한그릇 밥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달갑지않은 반찬에 대한 서운한 입맛을 누를 수 있도록 만 해보자.
비록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 될지언정….
[방송 M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