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조영남-美 유학시절 만난 간호사
기사입력 1999년 03월 26일 14시 20분
내게는 참 아련한 추억 하나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내가 미국 플로리다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을 때다.
그때 나는 LA 간호협회 초청 음악회에 참석하러 잠시 LA에 묵었어야 했다.
LA공항에 도착하던 첫날 나를 마중나온 간호협회 간부들에게 나는 다그치듯 물었다.
내 성미는 그때나 지금이나 급한 편이다.
"석방된 그 간호사 지금 어디 있죠?"
여기엔 설명이 좀 필요하다.
당시 재미한인 사회에선 커다란 사건 하나가 있었다.
바로 간호사 권총저격 살인사건이었다.
시카고 어느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한국계 총각 의사와 그 병원의 간호사가 사랑에 빠졌다.
처녀 간호사는 총각의사가 대학시절, 인턴시절 그리고 정식 의사가 될때까지 뒷바라지를 다 했다.
의사가 되면 둘이 결혼한다는 꿈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의사가 어느날 행방불명이 되었다. 요즘 시쳇말로 배신을 때린 것이었다.
의사가 LA로 몰래 이사를 가서 다른 집 처녀랑 결혼식을 올리고 사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간호사 아가씨는 분노했다.
시장에 나가서 권총과 실탄을 샀다. 권총을 사고 팔다니 썩을 놈의 미국 풍속도다.
사격장에 가서 사격연습을 착실히 했다. 그리고 드디어 D데이를 잡았다.
시카고에서 LA로 날아와 미리 알아두었던 유부남 의사의 아파트 문앞에서 기다리다가 아파트 문을 열고 나오는 의사를 향해서 네다섯 발의 방아쇠를 당겼다.
LA 한인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긴 재판으로 들어갔다.
미국 재판은 말만 들어도 길고 지루하다. 여기서 유재건이라는 한국계 미국 변호사가 혁혁한 공을 세워서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좀 빗나간 얘기지만 유재건은 이 사건 말고도 그 유명한 이철 사건에 헌신적으로 몸을 바친 공로(?)로 지금은 국민회의 부총재 자리까지 올라가 있다.
`그 간호사 지금 어디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살인범이라는 사회의 시선이 싫어서 아무일 안하고 조용한 LA교외 친구네 집에서 두문 불출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성미가 급한데다가 욱하는 것까지 있다.
그 길로 나는 간호사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지금은 간호사 아가씨의 이름도 잊었다. 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믿거나 말거나 그때 나는 지금의 서태지나 김건모 급 스타였다.
말문을 닫은 처녀를 그날 저녁부터 억지로 끌고 나와 내가 가는 곳을 다 데리고 다녔다.
사람들이 의외로 자신을 몰라본다는 사실에 접한 처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질타의 눈으로 보는 줄 지레 겁먹고 잔뜩 움크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관대하다는 걸 서서히 알게되었다.
이번에 나는 탤런트 오현경 양을 또 찾아가고 싶다. 물론 내가 너무 늙어서 사양하겠지만 말이다.
P.S(추신) 내가 오양한테 간다고 발표했더니 내 친구 녀석들이 같이 따라 가겠다고 줄을 쭉섰다. 썩을 녀석들, 전부 유부남이 그지경이다. 나만 혼자 사는 홀아비다.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