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호러마니아 (4)
기사입력 1999년 03월 26일 14시 20분
때로는 악마를 때려잡는 주인공이 되기도 했어.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주인공보다는 악마 쪽이 되어 상상도 못할 초능력을 발휘하며 살상하는 것이 더욱 매력이 있어지기 시작했지.
그래서 난 거의 날마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이나,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 `마니악 캅'의 코델이 되어 내가 평소에 증오하던 사람들을 상상 속에서 철저히 잔인하게 응징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난 `헬 레이저3'을 보다가 어느 틈엔가 살해 대상의 과거를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악마 핀헤드로 전이되었지.
그리고 주위에 내가 알 만한 살상 대상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웬만한 사람들은 프레디, 제이슨, 코델의 상상 속에서 죽어버린 상태였지.
골똘히 생각하던 나는 문득 그 청년을 떠올렸어. 나와 함께 공포영화로 빠져든 그 청년말이야.
그 청년을 떠올리자 무언가 어떤 장면들이 순간순간 잡히기 시작했어.
……질주하는 덤프 트럭
흰색 면 장갑을 손에 낀 청년
택시에서 황급히 내려 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여자
당황하는 청년의 얼굴
그리고 산산조각이 난 여자의 시체……
그런데 그 여자, 그 여자는 죽은 나의 아내였어.
그날의 사고 모습을 보았던 거지.
그리고 잠시 후 덤프 트럭을 운전하던 청년의 얼굴이 점점 클로즈업되기 시작했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희끄무레했던 것이 점점 선명해졌을 때, 순간 삐리릭 거리는 전자음을 들을 수 있었고 난 내 앞에 서 있는 그 청년의 모습을 보았지.
"아저씨！ 비디오 테이프 바꾸러 왔어요！"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상태에서 핀헤드의 쇠사슬 갈고리로 청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정신을 차린 난 내 앞에 널브러져 있는 천 조각과 마치 묵처럼 굳어버린 피를 보았어.
난 이것들이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아니 생각하려고 했지만, 내 앞에 박살이 난 텔레비전과 VTR은 나를 현실세계로 데려다 주었지.
그 후로 난 긴 긴 잠에 빠지게 되었고, 어느 틈엔가 자네가 나를 잠에서 깨우게 되었지.
자. 조금만 더 내게 가까이 와 볼 수 없나?
얼굴이 잘 안보여.
아… 이제 자네의 얼굴이 기억나네.
자네처럼 매서운 눈매를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들지.
그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왜 하필 내가 그런 환상 속에 있을 때 우연히 나타나서 그런 죽음을 당하게 되었나. 난 정말 자네를 해치고 싶지 않았어.
뭐? 뭐? 뭐?
자네가 정말로 내 아내를 치어 죽인 그 트럭운전사라고? 사고 직후 도주를 해서 숨어살다가 죄책감에 못견뎌 공포영화에 빠지게 되었다고? 내게 오히려 더 미안하다고?
그럼 할 수 없군. 내가 요즘 새로 빠지기 시작한 환상 속으로 자네를 끌고 들어갈 수 밖에….
난 요즘 `천녀유혼' 시리즈에 열광하기 시작했다네.[이번 회 끝]
글·오종석(아이디:메탈티스)/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