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서세원-아직도 그리운 어린시절 생일
기사입력 1999년 03월 24일 15시 06분
화분을 깨뜨렸는데도 이상하다. 혼이나긴 커녕 오히려 다친데는 없냐는 걱정 섞인 이야기를 듣는다.
1년내내 노래를 불러도 국물도 없더니만, 형과 누나한테는 비밀로 하라는 당부까지 들으며 읍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한그릇 얻어먹는다.
어린시절 생일은 그렇다.
내가 먼저 알지도, 그렇다고 옆에서 요란스럽게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평소때랑은 뭔가 틀린듯한 작은 감동 서비스에 `오늘이 내 생일이였구나'함을 느낄 뿐이다.
얼마전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간적이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거하게 취한 어린 학생들이 케@을 던지고, 샴페인을 뿌리며, 소위 말하는 `생일빵'을 하기위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이를 눈꼴시럽게 보고 혀를 내두르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재밌는 구경거리 정도로만 지켜보고 지나갈 뿐이다.
요즘 술집이나 식당에서는 생일을 맞이한 사람들을 위해 축하음악을 물론 폭죽에 샴페인, 사진 서비스까지 준비해야만 한다.
고깔모자까지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 생일을 축하해주는 손님들께 감사인사를 하는 모습. 이것 역시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3월 18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새벽부터 녹화를 위해 집을 나선 나는 갑자기 불이나는 핸드폰 음성메세지를 통해, 오늘이 내 생일임을 알았다.
넘쳐나는 꽃과 케@…. 고맙게도 나의 생일파티에 대한 들뜬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쉽지않았을 텐데. 나는 사람들의 섭섭함을 뒤로하고 집에 일찍 들어왔다.
늦게올 줄 알았다고 말하면서도 나를 기다리며 끓인듯한 아내의 미역국… 검은 미역줄기 한가닥, 한가닥이 유난히 부드럽게 넘어갔다.
하얀쌀밥을 미역국에 가득 말아 게 눈감추듯 후딱 먹어치웠다.
아내는 특별한 걸 준비못한 것에 대해 무척이나 미안해했지만,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푸근하고 편안한 생일이었음에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를 요란하게 만들었던 생일문화.
무언의 감동서비스를 통한 축하보다는 쏟아지는 박수와 정신없는 축하메세지를 좋아하고, 따끈한 미역국에 쌀밥보다는 색색깔 과일이 춤을 추는 생크림케@을 먼저 챙기는 요즘….
잊혀졌던 정든 생일풍경이 그립지 않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많이 먹으라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웬지 가슴이 뭉클했던, 작은 생일상의 추억이….[방송 M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