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20)
기사입력 1999년 03월 23일 15시 02분
오닉스는 거의 고함을 지를 뻔했다. 평생의 맹세가 깨어질 뻔한 순간, 오닉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과 저주들이 그를 상당히 힘들게 만들며, 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덕분에 오닉스는 몇 년 후 위궤양에 시달리게 될 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은 그런 데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키 드레이번은 충분히 여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녀를 에스코트하도록. 자유호로 모셔와라."
그리고 키 드레이번은 몸을 돌렸다. 오닉스는 `선장！' 하고 고함지르는 대신 오른발로 갑판을 쾅 굴렀다. 키 드레이번은 멈춰서서는 고개만 돌려 오닉스를 바라보았다.
오닉스의 손이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내 말에 대답해라！ 여자를 바다에 던져야 한다！'
키 드레이번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율리아나 왕녀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버렸다. 갑판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던 슈마허는 키 드레이번의 말에 분통을 터뜨리며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마음 뿐, 몸은 명령을 거부했다. 그래서 슈마허는 쓰러진 채 상대를 위협하려 드는 꼴불견을 연출하고 말았다.
"닥쳐라, 더러운 해적놈！"
그러나 키 드레이번은 쓰러진 상대의 위협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창백해진 얼굴로 키의 등을 바라보던 율리아나 왕녀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딱딱하게 말했다.
"오닉스씨라고 했죠?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저를 바다에 던져요."
오닉스는 그만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라이온은 확고한 대책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오닉스의 가슴을 떠밀며 재빨리 율리아나 왕녀를 안아들었다.
왕녀는 작게 비명을 질렀고,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 오닉스는 잇소리를 내며 도끼를 쥐어올렸다. 하지만 라이온은 웃으며 뒷걸음질쳤다.
"여어, 여！ 진정해. 자네도 들었지? 선장님께서는 이 레이디를 필요로 하고 계신다. 그런데 왕녀님. 아까 체중 어쩌고 하셨는데, 의외로 상당하십니다. 하하하！"
"나를 내려놓아요！"
"아아, 걱정해주실 필요 없습니다. 이 팔이 비록 연약해 보일 지 몰라도 이 정도 무게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 당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를 걱정하는 거죠！"
"그거라면 더욱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지요."
라이온은 그대로 자유호를 향해 걸어갔다. 슈마허는 일어나려 애쓰면서 고함을 질렀다.
"무례한 놈, 멈춰라！"
그러나 라이온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써 슈마허의 필사의 외침을 개소리로 만들어 버렸다. 오닉스는 입매를 떨면서 라이온의 등을 쏘아보았다.
자유호의 선상에 내려선 라이온은 그제서야 율리아나 왕녀를 갑판에 내려놓았다.
왕녀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고, 그런 왕녀를 향해 라이온은 허리를 깊이 숙여보였다.
"자유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율리아나 왕녀는 치맛자락을 쓸어내리고는 라이온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고마워요. 답례로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죠."
"비밀?"
"당신이 운반한 짐짝에는 손이 달려있어요."
쫘악！ 라이온은 따귀를 맞은 볼을 움켜쥐고는 동그래진 눈으로 왕녀를 바라보았다.
율리아나 왕녀는 새침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받기 싫은 선물이나 되는 것처럼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마구 옮겨다닌 것에 대한 댓가에요.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