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전여옥-'정보화시대의 희생양 O양'
기사입력 1999년 03월 23일 14시 53분
우리는 참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섹스장면을 그 누구도 보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이의 섹스 역시 훔쳐보기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사생활을 지켜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O양의 비디오가 모든 이의 관심사다.
모두들 아주 쉽게 그 이야기를 한다.
한 일간신문은 이런 현상을 다루면서 한 예로 회사 여직원이 구해온 CD－롬으로 전부서 직원이 보았다는 내용을 실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한마디로 미쳐 돌아가고 있는 증거였다.
어느 누구도 O양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사람이다.
물론 우리 모두가 파렴치하게 이유를 들 듯 설령 그녀에게 사생활과 사람 잘 못 사귄 문제가 있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O양이 전 국민앞에서 발가벗겨지고 인생이 난도질 당할 정도의 죄를 졌다고는 나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과 한개를 훔쳤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거나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러나 O양은 모든 것을 물질화 시키고 상품화된 성으로 삼는 이 무시무시한 세상의 함정에 걸려든 것이다.
더구나 성행위를 한 것은 남녀 두사람인데 유독 O양만이 이처럼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해야 할까?
가장 큰 이유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여자야 말로 이 사회에서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앞서 예를 든 기사처럼 적지 않은 여성들이 O양의 이야기를 마치 남성들처럼, 남성의 시각에서 이야기하는데 나 자신도 놀랐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그 비디오를 유통시킨 사람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그 비디오를 재미삼아 본 모든 이들이다.
물론 O양이 절대로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러는 우리는 얼마나 도덕적인가? 그리고 그런 가능성은 완전무결하게 없는가? 모든 것이 공개되고 무차별하게 뿌려지는 무시무시한 정보화의 함정에 우린 들 걸려들지 않으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마이클 클라이튼은 몇 년전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인터넷이 온 세상을 점령한 무시무시한 세상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인터넷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곧바로 인류의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의미에서 O양의 재앙은 실은 우리모두의 재앙인 것이다.[방송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