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기사입력 1999년 03월 22일 15시 15분
라이온은 오닉스의 동작을 세심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잠깐만요, 왕녀님. 지금 상황이 급한지라…."
"저도 급해요. 당신이 제 체중을 어떻게 아세요?"
오닉스는 하마터면 율리아나 왕녀를 놓칠 뻔했고, 혀를 깨문 라이온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라이온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하, 하하…. 저, 왕녀님. 실례했군요. 사과드립니다. 물론 저는 왕녀님의 체중을 모르죠. 하지만, 그 왜 눈대중이라는 것이 있잖습니까?"
"당신 눈이니까 눈대중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입밖으로 말하는 건 안돼요！"
"물론입니다. 예. 지당하지요. 어찌 그런 무례를."
라이온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여 슈마허에게 낮게 속삭였다.
"이보게, 슈마허. 자네 왕녀님도 만만찮군. 거의 나만큼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슈마허는 차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대신 침묵으로 라이온의 말에 찬성했다. 그 때 식스 1등 항해사가 레보스호 선상으로 건너왔다. 식스는 오닉스와 라이온을 쳐다보고는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둘 다 그만둬."
우스운 입장에 빠져버린 오닉스는 잠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겨드랑이에 낀 왕녀와 라이온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한손을 들어올렸다.
오닉스는 먼저 검지로 식스를 가리킨 다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가, 다시 검지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너는 내게 명령할 권한이 없다.'
식스는 격노한 나머지 뭐라고 말할 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그 틈을 타 오닉스는 율리아나 왕녀의 몸을 번쩍 들어올렸다. 라이온은 잇소리를 내며 돌격자세를 취했다. 왕녀는 소리높이 비명을 질렀다.
"던지지 말아요오！"
"멈춰라, 오닉스."
율리아나 왕녀의 비명소리 끝에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 하나가 연결되듯이 들려왔다. 오닉스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고, 라이온 역시 황급히 멈춰섰다.
자유호의 선교에서 한 사내가 오닉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색 외투로 몸을 감싼 키 큰 남자였다. 외투 아래로 거대한 칼자루의 끝이 비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 사내의 경우라면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검을 뽑아들 필요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사내는 그저 두툼한 왼손을 칼자루 끝에 얹어둔 채 오닉스를 쏘아보았다. 그 눈매에는 광기와 열정, 그리고 이글거리는 욕망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엘리엇 선장은 뱃사람이라면 꿈에서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 인물을 실제로 보게되자 신음을 토했다.
"노스윈드…."
오닉스는 주춤한 자신에 대해 분노했다. 그의 손이 급격하게 움직이며 키 드레이번에게 손짓을 보냈다. 슈마허나 율리아나 왕녀는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동작이었지만 해묵은 뱃사람인 엘리엇 선장은 알아볼 수 있었다.
재수없는, 불길함을 뜻하는 손짓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고 그 중간중간 오닉스는 턱으로 율리아나 왕녀를 가리켰다.
`여자는 재수없다. 배가 가라앉는다. 이 배를 봐라！ 여자를 태우니 이 지경이 됐잖은가！ 나는 우리 배를 구하려는 것이다.'
레보스호를 점거하고 있던 해적들은 오닉스의 손짓에 불안한 표정을 띄워올렸다. 이들도 뱃사람들의 오랜 미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라이온은 주위를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놈들, 동요하고 있군.
키 드레이번은 오닉스의 손짓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린 다음, 다시 조금 더 침묵했다. 그래서 오닉스는 굴욕감을 삼키며 초조한 심정으로 키 드레이번의 대답을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키 드레이번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녀가 두렵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