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 MBC'왕초' 거지들의 쿠데타
기사입력 1999년 03월 21일 15시 01분
"도대체 모두 어디들 간거야? 거지들아, 깡통 대신 돌멩이 들고 종로경찰서 앞으로 모여라!"
200여명의 거지떼가 종로경찰서로 몰려들어 경관을 집단구타(?)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가히 해외토픽감이랄 수 있는 대사건이다.
다름아닌 드라마 촬영현장의 모습.
다음달 초 방영을 앞두고 있는 MBC TV 드라마 `왕초'(연출 장용우)의 의정부 오픈세트는 남녀주연급 연기자들 외에 촬영을 위해 동원된 엑스트라 거지들로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연기자와 제작스태프까지 한꺼번에 200∼300명의 군중이 움직이는 촬영장은 50년대초 서울 종로통을 재현한 1천여평의 오픈세트가 비좁아 보일 정도다.
차인표(김춘삼) 김세준(앵무새) 이혜영(까마귀) 허준호(발가락)가 거지로 분장하고, 이훈(김두한) 박철(임형도) 송윤아(연지)는 각각 중절모 신사와 우아하고 세련된 신여성으로 모습을 바꿨다. 저마다 낯설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몸에 밴듯하다.
염천교 다리밑에 본거지를 둔 김춘삼 휘하 거지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도 현장에선 실제를 보는듯 리얼하다. 시대를 거슬러간 연기자들 틈을 부지런히 오가는 선글래스 낀 장용우 PD의 모양새가 차라리 어색해 보인다.
"조명 카메라 준비됐죠? 어이∼ 오른쪽 모자쓴 거지, 뒤로 조금만 물러서 주세요. 자, 크레인 위치 잡았으면 갑시다! 레디∼액션!"
PD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종로경찰서 앞에 모인 거지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폭력을 행사한 경관을 에워싼 뒤 집단으로 구타한다. 이어 시위해산 경찰이 골목에서 트럭을 타고 등장하고 공포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는 가운데 종로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컷!
`청춘' 후속으로 방영될 `왕초'는 제세구민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거지왕 김춘삼의 일대기를 다룬 내용.
일제와 해방전후, 6.25를 거치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해온 사람들의 자기희생과 우정, 의리, 사랑을 의미있게 묘사한다는게 연출진의 의도다.
[강일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