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18)
기사입력 1999년 03월 21일 15시 01분
라이온은 그제서야 자신이 쓰러뜨린 사내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피로 물들긴 했지만 슈마허가 입고 있는 것은 카밀카르 기사단의 복장이었다. 카밀카르 기사단이 수행하고 있는 엄청난 미녀라. 그럼 뻔하군. 라이온은 오닉스의 겨드랑이에 끼여있는 율리아나 왕녀를 향해 화려한 동작으로 머리를 숙여보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라이온이라고 합니다. 대륙에 소문이 자자한 왕녀님을 뵐 줄은 몰랐군요."
율리아나 왕녀는 성심성의껏 대답함으로써 라이온을 놀라게 만들었다.
"반가워요, 라이온씨. 제 자세가 이상한 것에 대해 너무 허물치 말아주세요. 불가항력이랍니다."
라이온은 그만 킬킬거리고 말았다. 죽을 때도 농담을 할, 마치 노련한 사내 같은 왕녀님이로군. 라이온은 오닉스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내려드리지. 그러나 오닉스는 그런 라이온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뱃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라이온은 당황한 목소리로 오닉스를 제지했다.
"어? 이봐, 오닉스！ 뭐하는 거야?"
오닉스는 잠시 라이온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뱃전 끝으로 다가갔다. 그 때 선교 위에서 건장한 해적 서너 명의 발밑에 깔려있던 엘리엇 선장이 고함질렀다.
"아, 안돼！ 저 놈, 왕녀님을 바다에 던지려고…."
"꺄아악！"
율리아나 왕녀가 가장 먼저 엘리엇 선장의 말에 반응을 보였다. 그제서야 오닉스가 뭣 때문에 뱃전으로 다가가는 지를 깨달은 율리아나는 발버둥을 치며 반항했다. 하지만 그녀의 허리를 부둥켜 안고 있는 오닉스의 굵은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라이온은 황급하게 외쳤다.
"이봐, 오닉스！ 멈춰！"
오닉스는 부릅뜬 눈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일단 오닉스를 정지시킨 라이온은 앞이 막막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시골뜨기 뱃놈을 어떻게 말린다?
흑기사호 한 척으로 사트로니아 해양청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던 전력을 가지고 있던 대해적 오닉스 나이트였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구식 뱃사람이었다.
노스윈드에게 패하여 그의 휘하에 소속된 후에도 그의 미신적인 성격은 바뀌지 않았고, 그래서 오닉스는 지금 배에 여자가 타면 재수없다는 미신에 따라 왕녀를 바다에 던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온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제기랄, 이 배의 모든 것은 이제 키 드레이번 선장님의 것이다！ 네 맘대로 바다에 던질 수 없어！"
오닉스는 키 드레이번이라는 이름에 확실히 반응했다. 그의 검은 마스크 뒤에서 끔찍한 신음소리가 터져나온 것이다. `끄흐으음！' 그러나 오닉스는 왕녀를 내려놓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두 눈에 한층 격렬한 분노의 불길을 뿜어내며, 오닉스는 보라는 듯이 뱃전에 한쪽 발을 척 올렸다.
"이놈이?"
라이온은 입술을 깨물며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스르릉. 검이 울리자 오닉스의 눈에 의혹이 스치고 지나갔다. 라이온은 그런 오닉스를 향해 차갑게 웃어주었다.
"해볼 테면 해봐. 그 여자를 던져봐！ 맹세컨대, 네놈 몸에서 그 여자 몸무게만큼 잘라내 그 여자를 뒤따르게 하겠다."
슈마허는 자신을 쓰러뜨린 사내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도끼를 거머쥔 오닉스의 손이 하얗게 변했다. 오닉스는 입매를 푸들푸들 떨고 있었다. 라이온은 그런 오닉스의 얼굴을 보며 무시무시하게 웃었다. 그 때 율리아나 왕녀가 의혹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저, 미안하지만 라이온씨.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