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김영철 '구멍가게도 변해야 산다'
기사입력 1999년 03월 18일 14시 55분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편의점의 원조인 `구멍가게'의 수는 약 20만개 정도가 된다고 한다.
체인화된 편의점이 없다면 그 수는 더 많은 것인데, 기업화된 편의점 때문에 구멍가게는 구멍가게 그대로 남아 있다.
하긴 24시간 동안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하는 편의점에서는 즉석 어묵과 라면도 끊여 먹을 수가 있으니까 편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편의점의 진짜 원조인 구멍가게는 왜 편의점이란 이름을 달지 못했을까.
우리 동네에도 구멍가게가 여러개 있다.
그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4평 남짓한 구멍가게가 있는데, 두 분은 항상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TV를 보며 가게를 지킨다.
어떤 때는 연속극에 너무 몰두해 있어 거스름돈 줄 것도 잊을 지경이다.
"초코파이는 어디 있지요?"라고 물으면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짓으로 대강 방향을 가리킨다.
또 이 가게에 들어서면 제일 좋은 자리에 비싼 물건을 두지, 왜 싸구려 스낵을 가장 좋은 자리에 놓았는가 싶어 할아버지께 물어보았다.
대답은 간단했다.
가게에 오는 사람이 스낵류를 제일 많이 찾아 귀찮아 상품 진열 테크닉을 무시한 것이란다.
가게 분위기도 그렇다.
빙과류 메이커가 비치해 준 냉동기는 유리문이 더렵고, 안에도 얼음 서리가 두껍게 얼어 있어 청소한 지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껌통에도 먼지가 쌓여 있으니 어디 하나 매점다운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구멍가게의 형태일 것이다.
깨끗하고 번듯한 편의점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물론 이런 실태는 주인에게 우선 원인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물건을 공급해주는 기업체들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물건만 배달해 줄 것이 아니라 상품 진열, 고객관리, 환경미화 내지는 가게 경영에 관한 방법도 전달해 주었다면 지금쯤 동네 구멍가게가 모두 편의점으로 변신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구멍가게가 사실 우리나라 유통구조의 풀뿌리인데 말이다.
아쉽다. [마리끌레르, 바자, 에스콰이어, 메종 그룹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