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16)
기사입력 1999년 03월 18일 14시 55분
레보스호와 자유호의 접근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흑기사호는 자유호의 반대편에 뱃전을 가져다 댔다. 자유호로 넘어온 흑기사호의 해적들은 그대로 갑판을 가로질러 레보스호에 뛰어든 다른 해적들과 합류했다.
곧 레보스호를 향한 공격은 두 배가 되었고, 레보스호의 카밀카르 병사들은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해적들의 기세에 밀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흑기사호에서 달려 들어온 해적들의 선두에서는 검은 갑옷을 걸친 사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얼굴까지 검은 마스크로 가린 전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밀카르 병사들을 장작패듯 내리찍었다.
카밀카르 병사들의 눈에는 그가 심해에서 기어나온 악마처럼 보였다. 슈마허와 칼을 교환하고 있던 라이온은 그 모습을 보며 고함질렀다.
"오닉스！ 이 놈은 내 거야, 가까이 오지마！"
오닉스라 불리운 검은 전사는 아무 말 없이 도끼를 거머쥔 채 승강구 쪽으로 뛰어갔다. 슈마허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검을 세웠다.
"네 놈이 죽을 때가 가까워 헛소리가 심하구나！"
라이온은 검을 오른쪽으로 눕히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사랑하는 자기, 이거나 맞고 뻗어줘！"
그리고 라이온은 그대로 왼발로 슈마허의 다리를 걷어찼다. 오른쪽의 검에 집중하고 있던 슈마허는 불의의 일격에 무릎이 꺾이는 것을 느꼈고, 그 때 라이온의 검이 그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승강구로 뛰어든 오닉스는 계단 전부를 뛰어넘어 단숨에 중갑판에 내려섰다. 육중한 몸이 떨어지자 갑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오닉스는 잠시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런 형태의 배라면 구조는 뻔하다. 바람처럼 움직인 오닉스는 잠시 후 노잡이석의 입구 쪽에 나타났다.
노잡이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컴컴한 노잡이석에 나타난, 완전무장한 검은 전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박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노예석 한쪽에 서있던 노예장은 목이 막히는 소리로 외쳤다.
"오닉스 나이트！"
마스크에 뚫린 구멍 속에서 오닉스의 눈만이 번쩍이며 노예장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오닉스는 한 손을 들어 간략하게 손짓을 보냈다. 노예장과 노예들 모두 알아볼 수 있는 손짓이었다. `모두 노를 놓고 엎드려라.' 그러나 노예장은 그 손짓을 거부했다.
대신 노예장은 레보스호에 오른 이후로 한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 자신의 배에 침을 뱉은 것이다.
"퉤！ 웃기지 마라！ 나는 너처럼 목숨이 아까워 노스윈드의 개가 되지는 않는다！"
오닉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것은 엄청난 모욕이다. 배는 목숨을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바다로부터 뱃사람을 보호하는 유일한 피난처이며 그들의 어머니다. 따라서 뱃사람들은 절대로 배에 침을 뱉지 않는다.
오닉스는 아무 말 없이 노예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고, 노예장은 급한대로 옆에 던져두었던 채찍을 들어올려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쐐액！ 착！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닉스의 걸음이 잠깐 멈추었지만, 그야말로 잠깐일 뿐이었다. 오닉스는 눈 앞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채찍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곧장 걸어갔다. 노예장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대해적의 손목을 겨냥했다. 저 도끼를 떨어뜨려야 돼.
차아악！ 노예장이 휘두른 채찍이 오닉스의 손목에 감겼다. 노예장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잠시 후 그 얼굴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의심으로 일그러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