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사업가 자질도 뛰어난 '여우' 이현세
기사입력 1999년 03월 17일 15시 21분
곰, 호랑이, 새끼 사자, 독사, 팬더…. 만화가의 성격과 이미지에 맞는 별명을 정하다 이현세를 떠올린다. 뭐라고 할까. 퍼뜩 여우가 생각난다.
그는 그만큼 뛰어나고 영악하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요령에서 문하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적인 지도력까지. 작가로서 작품을 창조해 내는 역량도 그렇지만, 이현세처럼 시대와 대중의 기호를 오랜 세월 동안 정확하게 짚어내는 만화가도 드물 것이다.
작가로선 특이하다 할만큼 창조적 능력과 현실 운용이라는 양날의 칼을 한손에 쥐고 있는 여우.
최근 들어 호황을 누린 만화 대여점 사업도 그가 이미 10년 전에 기획했던 아이템이었다. 만화잡지와 서점 만화의 득세로 대본소 만화가 극심한 타격을 입자 활로를 모색하던 그는 렌탈 방식에 맞춘 만화 제작을 제안해왔다. 91년초였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가의 만화책을 누가 빌려보겠느냐 싶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적중, 지금은 출판만화의 중심에 대여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영악함 때문일까. 그에 대한 느낌은 별로였다. 왠지 작가가 상업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멀리하고 싶은, 돼먹지 않은 교만 또는 질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이었다.
어느 날, 한 작가의 화실에서 그와 마주쳤다. 당시 만화가로서는 아주 드물게 그랜저를 몰던 그가 빈 몸으로 화우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왜 차를 몰고 오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대답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의 화실 거리로 봐 차를 가지고 와야 마땅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친구는 그가 차를 가지고 왔지만 자신을 생각해 화실 멀리 주차하고 걸어왔을 거라는 말했다. 순간, 존경스러움이 솟구쳤다. 그는 가난하고 차가 없는 친구를 배려해 걸어올 줄 아는 유명 스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