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립스 랩소디 (15)
기사입력 1999년 03월 17일 15시 11분
뒤얽힌 노들이 먼저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났다. 노가 얽히면서 속력이 줄어 들었지만 그래도 레보스호와 자유호가 부딪쳤을 때의 상대속도는 굉장했다. 부딪친 뱃전은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내며 비비적거렸다.
끼기기-긱！ 진동으로 양쪽 배의 선원들은 모두 주저앉거나 쓰러졌다. 그 때 반대쪽에 있던 그랜드머더호가 참으로 해적답지 않은 행동을 시도했다. 일제 사격을 위해 옆으로 서 있던 그랜드머더호가 그대로 레보스호에 선수를 들이박은 것이었다.
콰과과광！ 그랜드머더호의 선수에 있던 충각(전투함의 뱃머리에 달려있는 길다란 뿔. 주로 철제. 적함을 꿰뚫는데 사용된다)이 레보스호의 선체를 종잇장처럼 구겨놓았다.
충격으로 쓰러져 있던 슈마허는 간신히 일어났다. 얼떨떨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슈마허의 안색이 확 변했다. 레보스호는 이제 자유호와 그랜드머더호 사이에 완전히 끼어있었다. 레보스호의 노와 자유호의 노는 서로 뒤얽혀 있었고, 반대쪽에서는 그랜드머더호가 심장을 후벼파듯 충각으로 밀어오고 있었다.
더이상 배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슈마허는 검을 뽑아들고는 검집을 내팽개쳤다.
"카밀카르 만세！"
레보스호의 전투병들도 사태를 파악했다. 자유호의 해적들은 이미 갈고리와 그물, 사다리 등을 걸치고는 함성을 지르며 뱃전을 뛰어넘어 달려오고 있었다. 레보스호의 전투병과 선원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어올리며 해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는 육상전이나 다름없다. 자유호의 해적들은 짧은 검과 탐욕스러운 광기만으로 달려들고 있었지만 카밀카르의 정규 전투병들은 장검으로 해적들을 때려눕혔다. 레보스호의 뱃전에 뛰어오른 해적 하나는 다리에 칼을 맞고 그대로 저 아래의 바다로 떨어졌다.
풍덩！ 카밀카르 병사들의 선두에서는 기사 슈마허가 악귀같은 얼굴을 한 채 두 손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왕녀님의 이름에 걸고,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저 놈을 잡아！"
해적들도 슈마허가 지휘자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를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날아드는 칼을 받아내던 슈마허는 숨쉴 사이없이 허리를 찔러 들어오는 검을 피해 몸을 돌려야 했다. 카밀카르의 병사들도 그들의 지휘자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자유호와 레보스호의 뱃전이 맞닿은 지점에서 치열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다가오는 쇠몽둥이를 피한 슈마허는 상대방의 팔목을 내리쳤다. 해적은 잘린 손목을 움켜쥔 채 비명을 질렀고, 그 사이에 슈마허는 상대방의 복부를 걷어찼다. 해적은 쓰러졌고 슈마허는 그 등을 밟으며 몸을 빼내었다.
조금이라도 제자리에 서 있으면 당장 포위될 테니까. 그 때 또 한 명의 해적이 장검을 세워든 채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슈마허는 공격에 대비했지만 그의 앞을 가로막은 해적은 엉뚱하게도 검을 휘두르는 대신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뭐지?"
"슈마허！"
슈마허는 자신의 이름을 기합소리처럼 말하며 상대방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상대방은 슈마허의 검을 내리쳤다. 콰가가각！ 해적은 슈마허의 검끝이 갑판에 박힐 정도로 내리눌렀고, 둘은 잠시 검을 아래로 향한 채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해적은 싱긋 웃었다.
"나는 라이온. 날씨 이야기나 좀 나눌까?"
"이긱！"
슈마허는 잇소리를 내며 검을 뽑아들었다. 라이온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서 휘파람을 불며 검을 똑바로 잡았다. 그리고 슈마허를 향해 검을 내밀어 몇 번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날씨엔 관심없나 보군. 하지만 보라구. 죽기에 좋은 날씨잖나?"
"유언은 끝났나?"
슈마허는 곧장 검을 휘두르며 들어갔고 라이온은 기세좋게 응수했다. 곧 두 사람은 주위의 어떤 자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맹렬하게 검을 교환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