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신체약점 소재 말장난 이제 그만
기사입력 1999년 03월 16일 15시 43분
요즘 TV 예능프로를 보면 MC와 출연자들이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 서로의 신체적인 약점(?)을 소재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툭하면 `숏다리'니 `얼큰이(얼굴 큰 사람)'니 하는 말까지 튀어나온다. `숏다리'나 `얼큰이'로 지목당한 사람은 으레 그에 상응하는 답변이나 제스처로 `화답'하여 시청자들을 웃겨준다.
얼마전 방영된 SBS TV 심야프로 `서세원 쇼'의 경우.
서세원이 초대손님인 시사만화가 박재동씨 부부와 말을 나누는 코너다. 박씨의 부인이 과거 임신 당시의 얘기를 하자 서세원은 말을 끊고 "그때는 지금보다 배가 더 나왔겠네요"라는 농담을 건넸다. 박씨의 부인은 지금도 상당히 `통통한 편'이라 서세원은 그런 농담을 했을 터.
역시 얼마전 이 방송사 `좋은 친구들'의 출연자들은 `머리 큰 남자'와 `머리 작은 여자'를 두고 서로 비교하며 "큰 쪽이 두 배쯤 된다"는 식의 대화를 주고 받았다.
언젠가는 MBC TV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의 하숙생들이 주인집 할머니의 머리 크기를 두고 놀리는 장면도 있었다.
바야흐로 `몸의 시대'라고 한다. 육체가 정신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백보양보해, 요즘 TV 속의 몸 타령은 이런 경향의 반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몸'이라는 화두와 TV의 `얼큰이' 운운은 애초 짝으로 붙여 논의할 화제가 못된다. 한쪽은 의미있고, 한쪽은 무의미한데다 불쾌하다.
간단히 말하자. 그만 놀려대자. 전국의 `얼큰이'들이 방송국으로 달려가 시위하기 전에.
봄이 온다. 봄꽃이 떨어지고 뜨거운 계절이 돌아오면 여인들은 다시 `나시'와 `배꼽티'를 꺼내입을 것이다.
올 여름 TV들은 어쩌면 `배꼽이 추한 여자'를 찾아내 `배추'라고 놀려댈지도 모른다. 배꼽이 웃을 것이다.
[이승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