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립스 랩소디 (14)
기사입력 1999년 03월 16일 15시 43분
발 아래에서 박살난 포수와 노잡이들이 바다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레보스호의 궁병들은 미칠 듯한 분노를 느끼며 석궁을 세워들었다. 단심을 이용한 해적들의 포격 때문에 레보스호는 대포의 40% 가량을 잃었다.
하지만 자유호와 레보스호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상대속도가 워낙 빨라서 두번째 사격에 맞을 염려는 없었다. 재장전이 끝나기 전에 두 척의 배는 서로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화살은 그 사이에 몇 대라도 쏘아붙일 수 있다.
곧 레보스호의 선상에서 쏜 화살들이 빗발처럼 자유호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크허헉！"
기세좋게 갈고리와 사다리를 들어올리던 해적들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나동그라졌다. 엘리엇 선장은 선원들 전부에게 들으라는 듯이 고함질렀다.
"갈고리만 걸리지 않으면 도망칠 수 있다！ 계속 쏴라！"
자유호의 식스 1등 항해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를 갈았다. 엘리엇 선장은 어차피 포격에 맞을 것을 각오하고 들어온 것이었다. 레보스호의 궁병이 더 우수한 만큼 피해는 입을지언정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상당한 강수로군！ 대담한데. 저 말 들었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갈고리를 걸어！"
그러나 식스의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해적들은 감히 뱃전 너머로 머리를 들지 못했다. 레보스호의 궁병들은 기계같은 정확함으로 교차사격을 퍼부어대고 있었고, 화살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날아들었다.
식스는 다시 불호령을 내리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의 입은 열렸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다시 닫혔다.
어느새 석궁을 챙겨든 라이온 갑판장이 뱃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라이온은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가슴을 펴라. 죽음은 양해를 구하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인 법. 그러나 우리 모두는 태어난 것으로 이미 그 손님의 방문 예고를 받은 셈이잖아."
라이온은 휘파람을 불며 석궁을 장전했다. 날아온 화살 하나가 그의 귓가를 스치며 귀밑머리들을 떠오르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온은 뱃전에 다리 하나를 올리기까지 했다.
식스와 해적들은 모두 탄복하는 표정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무릎에 팔꿈치를 얹은 라이온은 한쪽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눈 앞으로 성큼 다가온 레보스호의 뱃전을 쏘아보며 외쳤다.
"지금, 이 세상에서의 자네의 방랑을 끝내주지."
라이온은 방아쇠를 당겼다. 탱！ 갈고리를 벗어난 시위가 진저리를 쳤다.
슈마허는 머리 바로 위로 날아가는 화살에 기겁했다. `젠장！ 맞을 뻔했군！' 그러나 라이온은 슈마허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간 석궁 화살은 레보스호의 선교 위에서 키를 잡고 있던 조타수의 가슴에 명중했다.
철판도 뚫는 석궁 화살이다. 조타수는 해머에 맞은 것처럼 뒤로 나가 떨어졌다. 화살이 폐를 관통했기 때문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갑판에 쓰러진 조타수는 입을 뻐끔거렸지만 그의 입에서는 말 대신 피거품만 흘러나왔다.
조타수가 나가 떨어지며 타륜이 팽그르르 돌았다. 레보스호는 곧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속력 때문에 키의 반작용도 엄청났다. 라이온은 통쾌하게 웃는 대신, 빈 석궁을 옆으로 던지고는 갑판으로 몸을 날렸다.
레보스호의 거대한 선체가 옆으로 기우뚱하더니 곧 자유호쪽으로 기울어졌다.
"충격에 대비하라！ 충돌한다！"
배수량 250t에 달하는 레보스호의 육중한 선체가 전속력 질주의 관성을 유지한 채 자유호와 충돌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