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립스 랩소디 (13)
기사입력 1999년 03월 15일 15시 35분
아홉 척의 배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 갔다. 뱃사나이들의 얼굴도 더욱 빠르게 굳어 갔다. 욕설과 함성을 지르던 해적들도 숨을 죽였다.
아홉 척의 배들이 생사를 걸고 돌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원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정적 어린 수면 위로 격렬하게 노젓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이 정적을 깨기 두렵다는 듯이, 엘리엇 선장과 식스 1등항해사 모두 소리없이 팔만 휘둘러 명령을 내렸다.
사수들은 경련하듯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곧 해적함대와 레보스호에서 무수한 화살이 발사되었다. 양쪽에서 무더기로 발사된 화살은 일순간 수면 위에 안개가 생긴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괴괴하게 흐르고 있던 정적은 핏빛 비명소리에 의해 얼룩졌다.
"크어억!"
"헉!"
양측 모두 상대방의 기동력을 감소시킬 목적으로 돛과 돛줄을 겨냥하고 있었으므로 화살에 맞은 자들은 상당히 운수가 사나운 자들이었다. 해적들의 인원이 더 많았지만, 레보스호는 해적들과 비슷한 숫자의 궁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량은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일차사격의 피해는 비슷했다.
양측 모두 밧줄이 몇 개 끊어지고 돛대와 돛에 화살을 맞았지만 돌진을 저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레보스호의 이물에 서 있던 기사 슈마허는 빈 석궁을 휘두르며 소리높이 외쳤다.
"전열 후퇴하고 후열 전진! 2차 사격목표는 적 궁병이다!"
정규병의 경우 또 하나 유리한 점이 있었다. 엄격한 훈련을 받은 카밀카르의 정규병은 궁병을 2열로 배치하고 있었다. 사격을 끝낸 전열이 물러나서 석궁을 재장전하는 동안 후열이 일제 사격에 들어갔다. 석궁을 당기느라 꾸물거리고 있던 해적 사수들이 2차 사격에 맞아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자유호의 식스는 격노했지만, 고함칠 겨를도 없이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사격을 끝낸 레보스호의 후열이 다시 물러나는 동안, 재장전을 끝낸 전열이 3차 사격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해적들도 모두 기겁하며 갑판에 엎드렸다.
그 사이를 틈타 레보스호는 해적 함대 사이로 무턱대고 돌입했다.
레보스호는 자유호와 그랜드머더 사이의 공간으로 끼어들었다. 자유호와 레보스호의 선상에서 거의 동시에 같은 명령이 터져나왔다.
"대포 발사!"
노끼리 서로 부딪칠 정도의 근접거리다. 겨냥할 필요가 없었다. 쏘면 무조건 맞는 사격에서, 승부의 관건은 장전 속도와 발사 속도다. 레보스호의 포수들은 배워 익힌대로 심지에 불을 댕기자마자 방패를 세워들고 몸을 숨겼다.
그러나 해적들인 자유호의 포수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사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두 척의 대결에서 자유호가 먼저 불을 뿜는 것으로 나타났다.
콰아앙! 스무발 남짓한 포탄이 레보스호의 우현을 난타했다. 시커먼 포연이 물결치는 가운데 목재와 의장들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레보스호의 우현이 무너지듯 파괴되고, 선원들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떨어졌다. 엘리엇 선장은 악에 받쳐 외쳤다.
"빌어먹을, 단심이다!"
해적식의 짧은 심지다. 대포가 깨지거나 오폭할 경우 그대로 죽게 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수단이지만 해적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제공격을 당한 레보스호는 우현 대포의 절반 가량을 잃었다.
포탄 몇 발은 노잡이석으로 뛰어들어 노 몇 개와 그 노잡이들을 가루로 만들어 놓았다. 해적들은 환호를 지르며 갈고리를 집어들었고 레보스호의 선원들 사이에선 지독한 공포의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 위로 엘리엇 선장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신경쓰지마! 궁병, 계속 사격! 갈고리가 걸리면 끝장이다. 피해를 돌보지 말고 돌파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