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입양아(1)
기사입력 1999년 03월 12일 15시 54분
진씨 부부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정갈하게 정리 된 넓은 사무실 안에 진씨 부부 두명만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앉아있는 의자 옆쪽에 육중해 보이는 책상이 위치하고 있었다.
넓은 사무실이 꽉 찰 만큼 커서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책상….
책상 위에 두껍게 깔린 유리 위에는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파리가 미끄러질 만큼 깨끗이 닦는다는 표현이 빈 말이 아님을 입증하기라도 하려는 듯….
진씨 부부 쪽으로 까맣고 반들반들한 명패가 놓여있었다.
＜연합아동입양복지위원회 위원 김희윤＞
김희윤…. 바로 진씨 부부가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진운초의 아내, 미진이 초조한 듯 의자 위에서 몸을 뒤척였다.
그녀의 하얀 다리를 덮고있는 하늘색 실크 원피스가 파르르 떨렸다.
아내의 가녀린 다리를 바라보던 운초는 그 연약함이 새삼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들 부부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부부였다.
육체적인 면뿐 아니라 사소한 성격까지도 놀랄 만큼 꼭 들어맞았다.
다만 문제는 아직 아이가 없다는 것 뿐.
운초는 어젯밤 그녀와 나누었던 기대감으로 가득 찬 섹스를 떠올리고는 머리 속
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가냘프지만 부드럽게 감겨왔던 그녀의 작은 손….
운초는 미진의 손을 꼭 잡았다.
미진은 불안한 눈을 들어 운초의 얼굴을 보았다.
운초는 씨익 웃어 보였지만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커다란 사무실에서 오직 들리는 것은 아내 미진의 한숨소리와 운초 자신의 마른침 넘기는 소리뿐이었다.
운초는 재킷 윗주머니의 담배 케이스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한대 피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온통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이 사무실에서의 흡연은 죄악이라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아마도 이 사무실의 주인은 결벽증 환자인지도 모른다. 온통 하얀 벽….
미진의 갈색 매니큐어가 발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운초는 공상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이제 애처로울 정도로 떨고 있었다. 운초는 슬그머니 손을 빼내었다.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쿠당！ 둔탁한 문소리가 운초의 등 뒤에서 울려왔다.
메마른 사무실 분위기만큼이나 메마른 소리.
운초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돌려 새로 등장한 인물을 맞이했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여성이었다.
까맣게 빛나는 생머리가 턱 밑에서 깔끔하게 커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눈부시게 하얀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미인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얼굴,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겠네요. 제가 책임자인 김희윤입니다."
지적이고 쾌활한 목소리.
운초는 순식간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목소리로 나쁜 소식을 전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계속]
글·김문경(아이디:밀랍인형)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