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훈기ML산책] ML5년…찬호의 여유있는 자신감
기사입력 1999년 03월 12일 13시 57분
61번이 새겨진 다저스 유니폼을 받고 맛있는 과자를 얻은 아이처럼 천진하게 함박 웃음을 터뜨리던 박찬호.
지난 94년 1월 LA 코리아타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정장 차림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던 박찬호는 훤칠한 키에 약간은 여윈 만 스물살의 앳된 청년이었다.
그후 5년, 5번의 스프링 트레이닝을 거쳤다.
박찬호는 첫해 시범경기에서 사인을 몰라 1루수도 없는 빈 베이스로 견제구를 던졌고, 94년 4월 8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애틀랜타와의 데뷔전에선 구원투수로 나가 너무 긴장해 포수 미트조차 잘 보지 못하고 당황할 정도였다.
멋도 모르도 그저 공만 세게 던졌다.
짧은 메이저리그 생활을 거쳐 더블A에서 1년을 보낸 뒤 95년 캠프에서는 다시 트리플A로 떨어지는 좌절도 맛봤다.
미국 진출후 세번째 맞는 96년 캠프에서도 빅리그 진출이 확실치 않아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97년 캠프에서는 제5선발 자리를 놓고 가장 친한 톰 캔디오티와 경합을 벌여야만 했다.
그런 박찬호가 이젠 당당한 메이저리거로 탈바꿈했다.
97년 14승, 98년 15승을 기록하며 다저스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 톱클래스의 투수로 성장해 여유롭게 올해의 캠프를 보내고 있다.
동료들의 우스개 농담에도 신경 쓰고, 혹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예민하게 반응하던 모습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이젠 먼저 농담을 던지고, 웬만한 일에는 덤덤하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매번 패전의 멍에를 쓰고, 두들겨 맞아도 자신의 위치에는 변화가 없다는 확신에 차있다.
미국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와 요즘 모습을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체격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은 물론 마운드에 서면 예전에 찾기 어려웠던 집중력이 돋보인다.
가만히 있어도 진정한 프로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꾸준한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과 기술, 상대타자들을 언제고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 팀에서의 확실한 자리매김, 여전히 잃지 않은 밝은 미소.
세계 최고의 야구무대 메이저리그의 정상으로 치닫는 한국 청년 박찬호의 향기가 베로비치 다저타운에 은은히 퍼져가고 있다.
[민훈기 특파원 hkmin@earthlink.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