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가위눌림 (3)
기사입력 1999년 03월 10일 16시 10분
그녀를 차로 치었다.
깊은 밤, 어디에선가 돌아오던 그녀를….
식은 땀이 배인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그렇듯 자그마한 몸뚱아리가 차에 치일 때 엄청난 무게로 실려온다는 것에 얼마나 놀랐던가.
`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인형처럼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흘러내리던 식은 땀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쳤다.
죽어있는 그녀의 시체를 누군가가 발견하기를 바라며….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발견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나의 범행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시작된 가위눌림….
잠시 꿈속을 헤맨 것 같았다.
딸 아이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을까?
눈을 뜨려고 했지만 어쩐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제기랄… 또 가위눌림이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발끝부터 움직여보려고 하였다.
왠지 차가운 기분이 발가락 끝을 간지럽혔다.
맑지 않은 의식이었지만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방안은 붉은 빛이었다. 가습기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
이제 그것은 무드를 위한 조명등이 아니라 주변 공간을 가둔 굴레처럼 보였다.
빛은 이제 어슴푸레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진한 핏빛이 온 벽을 뒤덮고 있었다.
끈적끈적하고 붉은 핏줄기가 흰 벽을 따라 흘러내리더니, 이윽고 벽과 천장이 맞닿은 모서리에서 펑펑 솟구쳐 올랐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크게 떴다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상상이었을 뿐. 나의 눈은 아직도 실낱같은 틈으로 겨우 방안을 주시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내 머리는 기묘한 각도로 뒤틀려 있었다.
내 눈 바로 앞에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의 가습기가 보였다.
핏줄기의 향연이 기쁜 듯 수증기가 퐁퐁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수증기는 바닥으로 쏟아지듯 흘러내려 뭉클뭉클 한데 엉키고 뭉쳐져서 요상한 모습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이 마치 여자의 머리카락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얀 머리채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수증기는 이미 완전한 여성의 몸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머리 가죽에까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가위를 눌리는 중에도 이렇게 생생하게 깨어있는 나의 감각이 증오스러웠다.
그녀는 천천히 침대로 기어올라왔다.
하지만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라 수증기의 움직임이었다.
아니, 수증기라는 표현도 옳지 않았다.
덩어리로 뭉친 그것은 오히려 구름과 더 비슷했다.
마치 둥둥 떠오르듯이 그녀는 내 몸 위로 밀려들어왔다.
차가운 팔이 나의 목을 휘감았다.
그녀의 얼굴이 가까스로 뜬 나의 얼굴 바로 앞으로 들이밀어졌다.
나는 바지 앞 섶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얼굴은 바로 그녀, 민영이었다.
[계속]
글·김문경(아이디:밀랍인형)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