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 (9)
기사입력 1999년 03월 10일 16시 10분
자유호의 선교에서는 한 사내가 조용하면서도 엄격한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주위의 다른 해적들이 욕지거리를 내뱉고 사나운 고함을 질러대는 것에 비해 사내의 조용한 태도는 이질적으로까지 보였다.
하지만 사내는 다른 해적들의 난동을 말리지 않았다. 그들이 사납게 구는 이유는 전투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의 뒤쪽으로 다른 사내가 다가서며 말했다.
"이보세요, 식스. 놈들이 흩어지고 있는데요?"
식스는 순간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하마터면 그의 주위를 감도는 엄격함이 깨질 뻔했지만 식스는 간신히 자신을 자제하며 고개를 돌렸다.
"1등 항해사님이라고 부르게. 라이온 갑판장."
라이온 갑판장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적 함대가 산개하고 있습니다. 식스 1등 항해사님."
식스는 자칫하면 라이온의 멱살을 붙잡아 바다로 던질 뻔했다. 하지만 품위없는 행동을 경멸하는 그의 뿌리깊은 근성이 다시 한번 라이온의 목숨을 구했다. 식스는 그 상황에서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미안하군. 다시 말하겠네. 이름은 빼고 불러주게나."
"아아, 그렇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1등 항해사님."
식스는 앞니가 몽땅 드러날 만큼 큼직한 미소를 지은 채 라이온을 향해 소리없이 악담을 퍼부어댔다.
망할 놈. 누구는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고 싶었는 줄 아냐? 줄줄이 다섯 명의 아들을 뽑아대다가 또 아들을 낳게 되자, 그만 귀찮아진 부모님이 그런 이름을 붙여버린 것이 내 잘못이냐? 40평생을 그런 이름으로 불린 것으로 족하거늘 네놈까지 내 이름을 가지고 놀아?
그러나 식스는 그런 자기변명을 하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식스는 엄격한 어투로 라이온에게 명령했다.
"중앙의 적선을 추격한다."
라이온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예? 저 배가 가장 빠른데요?"
"나는 지금 자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니네. 명령하는 것이야. 복창, 전속력으로 중앙 적선을 추격한다！"
"…가운데 배를 X빠지게 따라간다."
라이온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복창하고는 분노에 미친 식스가 검을 휘둘러대기 전에 재빨리 앞갑판으로 도망쳤다.
목표물이 정해지자, 여덟 척의 해적선은 이제 본격적인 전투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돛은 모두 접히고 대포에는 포탄이 장전되었다. 그리고 자유호 갑판 아래의 노예장은 히스테리컬한 기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자, 돌격이다！ 우물쭈물거리는 놈은 살을 발라놓겠다！"
최고로 격앙된 자유호의 노예장은 레보스호의 노예장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노예들을 독려했다.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에 이어 가죽 채찍이 살에 감기는, 그 끔찍한 소리가 울려퍼지자 노예들은 죽을 힘을 다해 노를 끌어당겼다.
예리한 채찍 소리와 쇠사슬의 절그렁거림, 그리고 노를 끌어당기며 용을 쓰는 노예들의 신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자유호의 갑판 아래쪽은 괴기스럽고 끔찍한 분위기로 물들었다.
"당겨！ 당겨！ 이 빌어먹을 놈들, 덥냐? 더워? 좋아！"
노예장은 채찍을 집어던지고 옆에 놓아두었던 물통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바가지로 물을 떠 노예들에게 뿌려대기 시작했다. 거대한 노를 당기느라 후끈 달아올랐던 근육과 피부 위로 느닷없이 찬물이 쏟아지자 노예들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을 느끼며 신음을 뿜어내었다. 하지만 감히 비명을 지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고통과 한기로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노예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노를 끌어당겼다. 잔인한 노예장은 비명이 나오지 않는 이상 독려는 실패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그악스럽게 물을 뿌려대고 고함을 질렀다.
"당겨！ 당겨！"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