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골목뉴스] '펑크쟁이'장태산과 나흘감 밤샘
기사입력 1999년 03월 10일 16시 10분
그해 겨울. 한국 최초의 아동만화 주간지 `아이큐 점프' 창간호 마감을 며칠 앞두고 안암동 장태산형의 화실로 `쳐들어 갔다'. 쳐들어 간 것은 그와 내가 허물없이 지내왔던 사이여서가 아니다.
그가 만화계에서 얼마나 `찍혀' 있고, 마감 `펑크쟁이'인가를 신물이 나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만화가들조차 `마감 하루 전에 원고를 받아내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공언을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으로 그와 통성명을 나눈 내 첫 질문은 `원고 다 됐지요'였다. 지금은 이해되는 일이지만, 그때 그의 얼굴에 비치던 낭패감과 당혹감이란…. 모르긴 몰라도 자신과 버금가는 강적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모든 만화가들은 신동우선생처럼 종이와 먹, 펜만 있으면 만화를 쉽게 그리는 것로 알고 있었으니 마땅히 원고가 다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논리였다.
한 시간이 멀다하고 화실을 드나들며 재촉하자 그는 자정 무렵 내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원고 작업 중엔 누가 옆에 있으면 진척이 안된다. 그러니 집에 갔다가 내일 오시든가 아니면 화실 옆 여관을 잡아드릴테니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하지만 내 대답은 막무가내였다. 괘념치 마시고 작업에만 신경 쓰시라고. 집에 가봤자 잠을 못잔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의 불같은 성미에 역정을 내지 않고 무례한 만화 편집 초년병을 곁에 두고 밤샘을 같이 한 그의 너그러움과 인연이 너무 소중하다.
칸을 나누고, 데생을 하여 펜터치를 마치면 배경을 채우고, 스크린톤 작업과 먹작업을 끝낸 다음 화이트 수정과 지우개칠 등의 뒷처리가 마무리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한 페이지의 원고. 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질을 거쳐야 하는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이후 원고를 받기까지 나흘 밤을 그와 지새웠다. 그 때 만화에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을 도란거린 것이 지금도 작가를 만나고 만화를 보는 힘이 되고 있다.
[김문환(아선미디어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