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가위눌림 (2)
기사입력 1999년 03월 09일 15시 05분
딸 아이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을까?
나는 애써 생각을 딸 아이의 수술로 돌리려고 했다.
어차피 내가 병원을 지키고 있었더라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의사가 아니니까. 하지만 초조한 기분은 좀 덜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가는 딸 아이. 14세.
열네살…. 애써 돌리려던 생각은 다시 의식의 바다를 표류하기 시작했다.
민영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당신 아내한테 말해버릴 테야！"
그래, 그녀는 그렇게 나를 협박했지. 그녀는 나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처갓집에 진 은혜가 어떤 의미인지, 얼마만큼이나 내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녀는 어쩌면 나의 마음 속속들이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빌미로, 그리고 나에게 제공해 주었던 육체적인 쾌락과 만족감을 담보로 그녀는 나를 지배하고 대가를 치러주기를 요구했다.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분명 아내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는 달랐지만, 민영은 나에게 맹목적인 사랑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녀의 영악함마저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민영 또한 나를 그렇게 사랑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보였던 모든 소유에의 욕구들이 그 증거였다.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머리 속이 순식간에 노곤한 잠의 그림자로 채워져 버렸다.
하지만 나의 의식은 여전히 민영의 그 작은 입에서 튀어나오는 모진 말들로 어지러웠다.
그녀는 아내에게 질투를 느끼는 듯했다. 아내가 없는 밤, 나의 침대 옆에 누워서 그녀는 나를 혼자만의 소유로 만들고 싶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며, 결혼생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설명에 입을 삐죽거리던 그녀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느 날 아침 잠을 깨어 그녀를 보기 전까지는….
그녀는 아내의 잠옷을 입고, 아내의 화장대에 앉아서 아내의 화장품을 바르고 있었다.
화장기라고는 없던 그녀가 아내의 향수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화를 냈다.
그녀의 길던 머리카락이 머리 뿌리 근처까지 싹뚝 잘려있었다. 마치 아내의 커트머리처럼….
그녀는 눈물로 화장이 녹아 내린 얼굴로 소리쳤다.
내가 밉다고, 내가 그녀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나는 그녀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그녀가 바닥에 나동그라질 정도로….
그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노라고, 그래서 나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도록 하겠노라고 울부짖었다.
그녀의 눈빛을 보고 그것이 진심임을 알았다.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음도….
결혼이 깨어진다고 해도, 혹은 처갓집에서 나에게 원조를 끊는다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세상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래서 나는….[계속]
글·김문경(아이디:밀랍인형)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