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가위눌림 (1)

기사입력 1999년 03월 08일 15시 33분



나는 빈집에 혼자 누워 있었다.

열린 창문에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내는 딸 아이의 수술 때문에 병원에 가 있었다.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외동딸이었다.

아내는 그 아이를 끔찍하게 아꼈다. 물론 나도.

나는 이불 속으로 몸을 옹송그렸다. 차갑고 건조한 겨울 공기가 창으로 들어와 내 몸 위를 스치고 사라져갔다.

건조…… 그래. 방안은 매우 건조했다. 나는 콧속이 말라 가는 것을 느꼈다.

침대 옆 테이블에 있는 가습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습기를 틀자 나지막이 삐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붉은 등이 켜졌다. 희뿌연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마치 아르누보 풍의 그림처럼.

오늘 아내와 함께 딸 아이의 수술대기실을 지키지 못한 것은 나의 부족한 잠 때문이었다.

물론 잠이야 딸아이의 수술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심각했다. 평생 눌려본 적도 없는 가위를 요즘 들어 눈만 붙였다하면 경험한다.

아내는 내가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릴 때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옆에 그녀가 있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마치 물밑에 가라앉은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희뿌연 수증기를 퐁퐁 뿜어내는 가습기가 바로 옆에 있었다.

그 붉은 등이 왠지 유치할 정도로 감상적으로 느껴졌다.

딸아이와 함께 설명서를 보다가 '무드등'이란 이름을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그러고 보니 딸아이와 함께 이 가습기를 사려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나는 돌아누웠다. 가습기에서 솟아 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등뒤로 느껴졌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 가위눌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듯 하다.

내가 연인이었던 민영을 차로 친 날….

민영은 앙큼한 계집이었다. 그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나를 유혹하고 긴 시간 동안 나의 연인으로서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만큼 나를 만족시켜줬던 장본인이었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내가 민영에게 느낀 맹목적인 사랑에는 비할 수가 없었다.

차가운 수증기의 기운을 등뒤로 받으면서 나는 민영이의 작고 탄력적인 몸을 상상했다.

작고 귀여운 얼굴…… 구름처럼 어깨를 덮고 있는 곱슬머리, 엷게 풍기던 샴푸향…….

상상 속의 그녀는 매끄러운 몸뚱아리를 내 몸 위로 미끄러뜨렸다.

작고 단단한 젖가슴이 나의 가슴을 압박해오는 듯 했다.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 귓가에 민영이의 조그마한 입술이 느껴지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환상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빈 내 옆자리를 아쉬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오늘처럼 아내가 자리를 비운 밤이면, 그녀는 새벽이 올 때까지 내 침대 옆자리를 지키곤 했다.

따라서 나는 오늘과 같이 혼자인 밤을 맞는 것이 매우 어색하기만 했다.

넓은 침대 위를 굴러봤지만 민영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계속]

글·김문경(아이디:밀랍인형)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