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태아 (4)
기사입력 1999년 03월 07일 15시 22분
`만일 분식집 화장실 같은 곳에서 이 악마 같은 생명을 낳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쩌면 감기약 때문에 끔찍한 괴물의 모습을 가진 기형아일지도 모른다.
`혹은 집 안, 이 방안에서 출산하게 된다면?'
희진은 고함을 지르지 않을 것이다. 그 작은 악마의 울음이 터져 나오기 전에 숨통을 끊어야만 한다.
희진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연필꽂이로 눈을 돌렸다. 가장 가운데에 커터 나이프가 꽂혀 있었다.
희진은 생각했다.
`재빨리 칼을 잡고 그 추악한 괴물의 목을 따버리는 거야…. 그 앙증맞은 입을 손으로 막고 말이지！ 그럼 시체는?'
'엄마나 청소 아저씨의 눈에 띄면 안된다. 완벽히 사라져야만 한다. 변기에 따로 따로 흘려보내는 거야. 하지만 만일 조각이 걸려서 변기가 막힌다면? 그럼… 어떡하지…?'
`그럴 순 없어…. 그 괴물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져야만 돼…. 그럼… 먹어?'
희진은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냈다.
뱃속의 괴물이 희진 자신을 조롱하며 배 안에서 요동을 치는 것만 같았다.
미웠다. 정말 너무나 미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악마의 자식이….
그것이 몸밖으로 나오기 전에 깔끔하게 처리할 수만 있다면?
희진이의 눈에 책상 위의 커터 나이프가 보였다. 누구도 그 악마의 씨를 보기 전에….
희진이의 눈에 커터 나이프가 보였다. 그 괴물의 목을 조르고 죄악의 상징인 몸을 조각조각 낼 수만 있다면….
희진이의 눈에 커터 나이프가… 나이프….
희진이는 있는 힘을 다하여 칼을 쑤셔 넣었다.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작은 괴물의 보금자리에….
온통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유리 벽을 등진 채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 중년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의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댁의 따님은…."
의사는 애를 태우려는 듯이 말꼬리를 흐려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폭행의 쇼크로 인한 정신착란 같습니다. 손을 풀어놓기만 하면 몸에 자해를 가해요. 특히 배에요. 임신에 대한 증오로 생각됩니다. 당분간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니 입원을 시키셔야 합니다."
두 남녀는 맞잡은 손에 꽉 힘을 가했다.
여자의 눈에 맑은 눈물이 맺혀 맞잡은 손위에 떨구어졌다.
"그러도록 하죠. … 저흰 저 아이가 그런 일을 당했는 줄도 몰랐어요. 저희 부부 죄가 큽니다. 흑흑흑…."
여자가 차마 말을 못잇자 남자가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아기는 어떻습니까?"
"아이요?"
"예. 저 아이의 뱃속에 든 그 아기 말예요."
"아… 네."
의사는 안경을 쓰윽 추켜 올리며 말했다.
"상상 임신입니다."
유리 벽 뒤에는 희진이가 스트레이트 재킷에 몸이 매인 채 한없이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며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없이….[이번 회 끝]
글·김문경(아이디:밀랍인형)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