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른여섯에 부르는 '청춘만가'
기사입력 1999년 03월 07일 15시 22분
시인 유하씨(36)가 다섯번째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열림원)를 냈다. 네온사인 휘황한 압구정동에서 서정의 숲으로 돌아왔다.
더이상 압구정동과 세운상가를 배회하지 않는다. 당대의 대중문화를 예리하게 풍자했던 예전의 시가 아니다.
청춘의 한때, 그 빛나던 시절의 사랑을 느리게 추억한다. 봄날 오후의 햇살 속을 너울너울 날고 있는 나비를 연상시킨다. 아련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이다.
무엇이 그를 압구정동에서 서정의 숲으로 이끌었을까.
`설레임이 멈추면 무지개도 사라지는 것/늙은 지혜보다는 철없는 설렘이 더 소중하나니'(`네 눈앞에 무지개가 떴구나'중) 하는, 지난해 가을 문득 스쳐간 생각. 시인은 그 설레임과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 젊은 날을 찾아간다.
그리고 어설픈 깨달음의 잠언보다 서툰 가슴떨림을 이야기한다. 그 언어는 수다스럽지 않고, 또 현란하지도 않다.
"시의 근원적 에너지는 세상에 대한 연애감정이다. 내게 떨림을 가져다 준 모든 것들에 대해 경배하는 마음으로 썼다."
대중문화를 풍자하는 시에 매너리즘을 느꼈고, 그래서 현란한 수사가 아닌 담백한 발라드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그대'가 있다.
`어느날 내가 사는 사막으로/그대가 오리라/…/그대 손길 닿는 곳엔/등불처럼 꽃이 피어나고/…/가난한 우리는 지평선과 하늘이 한몸인 땅에서/다만 별빛에 배부르리'(`어느날 나의 사막으로 그대가 오면'중)
하지만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녀가 곁에 없었기에/ 풍경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이제 청춘과 헤어질 때. 시인은 `잘가라, 내 청춘의 타이타닉이여'라고 외치며 미련없이 작별을 고한다.
"예전의 시는 스포츠카를 몰고다니며 쓴 것이었다. 이번엔 한적한 시골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느낌의 시를 쓰려고 했다."
청춘에 대한 그리움과 작별 선언이라는 상반된 감정의 공존. 그 팽팽한 줄다리기가 나비의 비행만큼 매혹적이다.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