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태아 (2)
기사입력 1999년 03월 04일 14시 52분
꼭 어디에선가 희뿌연 유령이 튀어나와 희진의 목덜미를 잡아챌 것만 같았다.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희진은 침을 꼴딱 삼키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어슴푸레하게 밝혀진 가로등 저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어쩌면 저 사람은 늦게까지 근무하고 이제야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회사원일 것이다'.
이런 어두운 곳에서 모르는 사람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지다니.
어쩌면 유령이나 귀신같은 초현실적인 것 보다 모르는 사람 한 명이 더 무서운 것일 지도 모르는데….
희진이 잠시 방심하고 걸음을 늦춘 동안 그 남자는 어느새 희진의 바로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희진이 걸음을 빨리 했지만 그 사람과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희진의 입술에서 거친 호흡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머리 속에서는 이런저런 상상들이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거의 뛰고 있었다.
남자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남자의 발걸음이 더욱 빨랐다.
그 남자의 우악스럽게 큰 손이 희진이의 하나로 묶여진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희진이는 엉겁결에 뒤로 주저앉고 말았다.
교복치마가 허벅지까지 밀려 올라가 있었다.
어두워서 남자의 표정은 알아볼 수가 없었지만 `흐흐…' 하는 즐기는 듯한 웃음 소리가 그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듯 했다.
남자는 거칠게 희진이의 목을 누르며 위로 올라왔다.
희진이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지만, 한적한 골목에서는 아무도 듣고 도와주러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남자의 큰 손이 인정사정 없이 날아와 희진의 뺨을 쳤다.
희진이의 고개가 홱 돌아가며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정신을 차려야한다…' 희진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무릎에 힘을 주며 꽈악 다리를 오므렸다.
그자의 손이 끈적하게 희진이의 허벅지를 훑어왔다.
희진이는 다리에 더욱 힘을 주며 반항했다.
목이 졸렸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남자가 거칠게 다리를 떼려고 했지만 희진이는 완강하게 버텼다.
미주가 미웠다.
`내가 왜… 내가… 왜? 왜? 왜?'
희진이의 입속에서 괴로운 외침이 터져나왔다.
남자가 날카로운 주먹을 희진이의 배에 내려꽂은 것이었다.
숨이 턱 막히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져가는 것을 느꼈다.
다리는 스스로 스르르 벌려졌다.
그리고 남자는…, 남자는….
"으아악…！"
더 이상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희진이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희진이는 배에다 손을 가져다 댔다.
그 강간범의 정자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희진이의 뒷덜미에 소름이 돋쳤다.
그 크고 우악스럽던 손, 거친 욕설과 매질… 그리고….
"흐윽…."
희진이는 거칠게 책상서랍을 열어 젖혔다.
서랍 안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방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계속]
글·김문경(아이디:밀랍인형)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